[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인터뷰] "核포기로 신뢰 얻어 외자유치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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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서 독립한 유라시아의 자원 부국,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중앙아시아 정상 중 유일하게 골프를 칠 정도로 자본주의 마인드가 강하고 외국 기업 유치에 적극적인 그는 10년 만에 초원의 나라 카자흐스탄을 중앙아시아의 강국으로 부흥시켰다는 찬사를 받는다. 방한 중인 그를 13일 서울 신라호텔 숙소에서 만나 약 1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

-이번이 1990년 11월, 95년 5월에 이은 세번째 방한인데 소감은.

"이번에도 따뜻한 인상을 받았다. 누구든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한국민의 괄목할 만한 발전과 성취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역동적인 국가다. 매번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다. 이번 방한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고, 통일 등 새로운 과제를 훌륭히 달성할 것으로 본다."

-카자흐스탄은 과거 핵 보유국이었지만 스스로 이를 완전히 포기한 최초의 국가다. 핵을 포기함으로써 얻은 것은 무엇인가. 최근 핵 보유를 추진 중인 북한에 조언을 한다면.

"소련과 같은 거대 국가는 다르지만, 중소 규모 국가에서는 핵이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오히려 국제사회의 의심과 불신만을 초래한다. 안전이 아니라 반대로 위협의 원천이 된다. 실질적인 안전 보장은 국제적으로 믿을 수 있는 국가라는 평판과 경제적인 번영, 정치 개혁이 보장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된 후 제일 처음 내린 명령이 세미팔라틴스크의 핵 실험장 폐쇄 였다. 이후 SS-18 장거리 핵미사일을 전부 포기했다. 핵 대신에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국가라는 믿음을 얻었고, 그 결과 독립 후 1년 만에 1백20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 현재 10년 이내에 들어올 장기 투자 확정분만 1천5백억달러가 넘는다."

-대통령은 중국.러시아와의 장기적 협력과 공동 관심사에 대한 대응을 위해 상하이 협력기구(상하이 6)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아시아 16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판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인 아시아교류신뢰구축회의(CICA) 창설을 주도했다. 여기에 남북한을 초청할 계획은 없나.

"상하이 협력기구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역내 안보와 협력, 장기적으로는 전 아시아의 번영과 안정을 위한 조직이다. 현재 사무국이 결성됐고 예산을 확정해 구체적인 사업들을 진행하는 단계다. 인도.파키스탄.몽골 등이 참여 요청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하지만 이들 6개국과 이란.인도.터키 등 16개국이 참여한 아시아교류신뢰구축회의에는 한국과 북한의 참여를 환영하며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면 좋을 것으로 본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도 논의할 계획이다."

-21세기 들어 천연자원, 특히 에너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카스피해 유전개발 사업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자원 협력을 포함해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협력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 카자흐스탄 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석유.가스 공업이다. 전체 GDP의 10%, 공업 생산의 40%, 수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향후 10년간 예정된 투자액도 석유가스 부문에서만 1천5백억~2천억달러다. 에너지와 광물자원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은 잠재력이 크다. 우리는 한국의 석유 컨소시엄 창립을 환영한다. 한국 기업인들이 자원 분야만이 아니라 수도 아스타나의 인프라 건설을 비롯해 인터넷.통신망 현대화, 바이오 등 첨단기술 이전 등에도 관심을 갖길 기대한다.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기대한다."

-카자흐스탄에는 많은 한인 동포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쌀 문화를 전파하고 카자흐스탄의 경제와 문화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이 독립국가가 된 후, 이 지역 한인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고 카자흐스탄인에 비해 공직 임용 등에 있어 차별당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문명과 종교가 교차하며 세계 선진 국가들의 관심이 중첩되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민족만도 1백개가 넘는다. 그 때문에 정치적 안정과 민족 간의 화합을 유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카자흐스탄은 인종 간.종교 간 이해를 현명하게 조화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가장 모범적인 다문화 국가'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고려인 공동체는 역동적으로 발달하는 민족집단 중 하나며 카자흐스탄 발전의 훌륭한 자원이다. 국어는 카자흐어지만 러시아어 등 다른 모든 민족어도 적극 보호.육성되고 있다. 카자흐는 한국어와 같은 우랄-알타이어다. 다민족 사회에서는 언어를 많이 할수록 유리하다. 많이 알면 알수록 그 사람에게는 성공할 기회가 더 많이 온다. 그리고 이것은 어떠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카자흐스탄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나. 20년쯤 후에는 카자흐스탄이 어떤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나.

"지난 12년간 카자흐스탄에선 대규모의 경제적 건설이 이루어졌고 생활 수준이 향상됐다. 또 확고한 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가까운 미래에 공업개선 발전 전략 등이 제대로 가동되면 국내총생산(GDP)은 3~4배 증가될 것이다. 또한 선거.행정제도의 개선과 현대화, 사법제도의 진정한 독립 보장 등이 이루어지는 발전되고 부강하며 자유로운 나라가 될 것이다."

-취임 후 지금까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일은 무엇인가.

"민족 간.종교 간 화합으로 사회 안정을 유지한 것이 큰 성공이었다.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카자흐스탄은 사회 전체의 화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이것 없이는 경제적 향상도, 정치적 자유도, 국제적인 권위도, 그 어떠한 것도 따르지 않는다."

김석환 논설위원<kshps@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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