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때 침몰한 독일 잠수함 … 노르웨이 바다 수은 오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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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웨이 앞바다에서 격침된 독일 잠수함이 인근 해역을 유해 중금속인 수은으로 오염시키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12일 보도했다. 신문은 잠수함이 운반 중이던 다량의 수은이 주변 어패류는 물론 해양 생태계 전반을 오염시키고 있어 환경 재앙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전쟁 막바지인 1945년 2월 9일 일본으로 향하던 독일 잠수함 한 척이 노르웨이 서남부 베르겐 인근 해역에서 영국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당시 이 잠수함엔 일본의 전투기 엔진에 사용할 금속 가공 등에 필요한 수은 65t이 수천 개의 깡통에 담겨 실려 있었다. 당시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동맹국인 일본군이 태평양 지역 제공권을 장악해 미군을 견제해 주면 유럽의 전세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같은 지원을 지시했다.

당시 잠수함의 격침 장면을 목격한 노르웨이 주민 크리스토퍼 칼센(73)은 "독일 잠수함의 잔해가 수면 위 60m까지 솟구칠 정도로 어뢰의 폭발 위력이 컸다"고 회상했다. 어뢰 공격을 받은 독일 잠수함은 두 동강이 났으며, 승무원 73명과 함께 120m 아래 해저에 가라앉았다.

그로부터 60년 가까이 흐른 2003년 노르웨이 해양 경비대가 이 잠수함의 잔해를 발견했다. 노르웨이 당국은 잠수함에 실려 있던 깡통이 부식돼 구멍이 나면서 안에 들었던 수은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침몰한 배 주변에서 잡은 물고기.게 등 어패류에서는 수은이 검출됐다. 노르웨이는 연어.고등어 등 해산물이 수출 품목 2위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수산업 국가다.

노르웨이의 환경 컨설턴트인 크리스티안 홀은 "이번 사태는 일본의 미나마타병과 같은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나마타병은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와 인근 지역 주민 수백 명이 다량의 수은이 든 어패류를 먹은 뒤 뇌와 신경에 손상을 입고 마비와 발작 증세를 겪다가 숨지면서 발견됐다. 한 비료공장이 1932~68년 27t의 공업용 수은을 배출하면서 미나마타강과 바다가 오염돼 생긴 참사다.

전문가들은 잠수함의 잔해와 수은을 제거하는 작업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깡통에서 수은이 계속 새어 나오고 있으며 이미 오염이 상당히 진행돼 이를 수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잠수함을 인양하거나 원격 잠수정을 이용해 수은을 제거하는 작업을 잘못 시도했다가는 오히려 수은 오염을 더욱 확산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에는 잠수함 잔해와 수은 깡통을 두꺼운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어 버리는 '봉인' 방안을 제안했다.

노르웨이 해안 당국 관계자는 "잠수함이 침몰한 지점에 30만t의 모래를 퍼부은 뒤 50㎝ 두께의 돌을 쌓아 모래의 유실을 막고, 오염 물질을 봉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오염 물질을 제거하지 않고 단순히 덮어 버리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수은을 완전히 제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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