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화학무기 불사용 선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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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화학무기를 어떤 이유에서든 사용하지 않겠다는 부시 미 대통령의 선언은 미소관계개선의 차원에서 보다는 범세계적인 군축노력의 차원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
미소는 이미 앞으로 10년에 걸쳐 화학무기를 폐기하기로 합의한 바 있고 재래식 무기의 감축협상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룩하고 있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다. 따라서 두강대국은 군축문제에 관한한 순조로운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소를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군축분위기와는 달리 제3세계국가들,특히 중동지역에서는 오히려 군비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돼 분쟁의 불씨로 늘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냉전시대의 종식과 유럽내의 무기감축에 따라 큰 평화는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돌발적 지역분쟁의 위험은 줄어들지 않으리라는 걱정이다. 그러한 걱정은 이미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에서 현실로 나타났었다.
역설적인 것은 미소를 중심으로 했던 군사블록이 해체되며 감축대상이 되었던 무기들이 완전히 폐기되지 않고 헐값에 처분되며 제3세계 무기시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유럽지역의 무기뿐 아니라 중국과 북한을 비롯,이스라엘·이집트등 많은 나라들이 자국무기의 판매에 나섬으로써 제3세계에서는 불안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화학무기 일체를 폐기하겠다고 나선 것은 강대국들이 군비축소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다른 나라들에 대해 군비경쟁을 자제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이라는데서 평가하고자 한다.
화학무기를 보유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 존재사실조차 부인하거나 은폐해 왔을 뿐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고 나서도 그런 일이 없다고 발뺌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이란­이라크전쟁,이라크의 쿠르드족 살상의 가공할 폐해를 보고서도 실제로 국제적으로 이를 제지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그러나 이제 화학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을 비롯,소련등이 이의 폐기를 앞장서 노력하고 실천단계에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군축분위기는 비단 화학무기뿐 아니라 모든 부문,특히 핵무기분야에 까지 파급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강대국들이 더욱 자제노력을 보임으로써 이번의 화학무기의 예에서 처럼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단계까진 못되더라도 핵선제사용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나올 만큼 국제적 분위기가 하루빨리 성숙되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특히 북한이 다량의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핵무기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는 한반도의 현실과 관련해 미소의 이러한 군축노력에 우리는 커다란 기대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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