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총재의 새 고민/전육(중앙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강경대군사건 대처방식을 비롯,최근들어 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정국대응 스타일에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고 있어 그 동기와 전개과정이 관심을 모르고 있다.
약간의 들쭉날쭉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강군사건을 보는 김총재의 시각이 냉정하고 섣불리 재야의 투쟁방식에 말려들어가지 않으려는 노력이 역력하다는 얘기다. 10년 이상 고비고비 김총재를 취재한 경험을 살려 1일 밤 직접 그를 찾아가 물어봤다.
시국관과 몇가지 쟁점에 관한 인식면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첫째,그는 강군 사건이후의 사태를 87년 6·10항쟁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았다. 이번 사태는 국민들이 폭력적 공권력에 일시 화를 낸 것이지 가투에 의해 정권퇴진을 요구할만한 정도는 못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재야는 설득하고 원내전략은 유연하고 현실적으로 수립하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실제 김총재는 전대협을 비롯,재야단체 대표들에게 비폭력원칙을 설득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국민들이 요즘 감옥에 간 사람들에게 왜 냉담한줄 아느냐. 공안검사들이 지금처럼 쉬운때가 없었다고 말하는 이유를 살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뿌리가 닿는 재야와 협의는 하되 행동은 선택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도 느낄 수 있었다. 백골단해체,공안정치 종식을 위한 노정권의 성의표시만 있으면 넘어갈 수도 있지않나 싶을 정도였다.
김총재의 진짜 관심은 92년말 대권경쟁에 있는 것 같았으며 오늘의 정치행보도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맞추고 있는 인상이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이나 여권일각의 희망사항인 내각제개헌에 대해선 단호한 거부태도를 밝혔으며 중간과정이 어떠하든 김영삼씨와의 한판승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내각제개헌,공안통치 등이 모두 노대통령의 「허욕」때문이라고 잘라 주장했다. 노대통령과의 몇번에 걸친 직접 면담에서 대통령의 내각제에 대한 집념이 무척 강하다고 느꼈으며 그 집념은 퇴임후의 안위문제에서 나온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총재는 그러나 『내각제는 전략적 융통성을 부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상황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고,만약 이 약속을 저버리면 매도당해도 좋다』고 까지 말했다.
신민당을 광역의회·14대 총선에서 약화시켜 내각제를 받아들이게 하겠다는 여권 일부의 전략을 「무리수」라고 일축하며 웃었다. 내각제 추진이 노대통령의 이해타산에 의한 것임을 국민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제도의 장·단점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라는게 그의 확신인 듯했다.
따라서 그의 정치 목표는 차기 대통령선거의 승리에 있으며 좀더 좁혀 말해 김영삼씨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면 김영삼씨와 어느 단계까지는 경쟁과 협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소리로 들렸다.
이를테면 양김대결 실현에 방해가 되는 내각제추진,세대교체론,차세대그룹의 부상을 막는데는 공동보조를 취하고 김영삼씨의 인기와 지지기반은 되도록 약화시키자는 전략이 아닌가 싶었다.
따라서 김영삼씨가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여당후보가 될 가능성이 『최소 50%는 된다』고 점치면서도 그의 3당통합이 「변절」이며 여당이 되어 개혁한 것이 하나도 없다며 「무능」을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필승론이 지방색에 근거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의 지방색은 호남을 텃밭으로 하는 종래의 지방색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소위 6공들어 두드러진 TK독주에 대한 서울·경기·강원 등 중부지역 사람들의 정서를 겨냥하는 듯했다.
그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충분히 당했고 명예가 실추되었기 때문에 이제 용서해야 한다』고 전제,『전씨는 물가안정·경제발전과 지역감정면에선 노대통령보다 훨씬 나았다』고 평가하는 것이 색다르기까지 했다. 김총재는 전씨가 한때 안기부장·보안사령관에 호남사람들을 앉히고 국회의장·국무총리·여당대표에 지역안배를 하려고 애썼던 점을 잊지않고 있었다.
그는 노대통령의 친인척정치에 몹시 비판적이었으며 자신의 정국을 보는 시각,현 정권의 인사정책 등에서 비호남·비영남권의 보편적 견해와 일치시키려 몹시 애쓰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김총재의 이같은 변화는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가 어떤 언행을 하더라도 김대중이라면 일단 불신·거부하고 그 동기를 「야심」과 「술수」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사회에는 적지않게 있다.
이런 시각이 세를 이룬데는 김총재 자신의 잘못과 책임도 적지 않다. 가령 지난 대통령선거에 앞서 직선제가 되면 불출마 하겠다고 선언했다가 당을 깨고 나가 정권교체의 기회를 무산시킨 것이라든지 노대통령의 중간평가를 필요없다고 했다가 다시 하라고 요구하는 등 일관성을 잃은 갈지자 행태가 여러번 있었다.
때문에 요즘 쏟고 있는 김총재의 「뉴 김대중」 노력이 진실로 다수의 믿음을 사자면 아직도 보여주고 확인시켜야 할 일들이 첩첩이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때 남보다 빨리 알아차리는 능력면에서 김총재의 탁월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여론은 변덕스럽고 일관성이 없는 약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지도자는 여론을 무시해서도,너무 순응해서도 안된다.
책임있는 지도자는 지나친 임기응변이나 불가측성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현실적이고 신뢰성있는 뉴 김대중론의 각론을 기대해 보고자 한다.<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