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라의 KISS A BOOK] 삼겹살과 베이컨 말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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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해년 돼지해가 밝았다. 미련함의 상징으로 무시당하거나 복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돼지. 부당함과 과분함을 오가는 변덕스런 처우에 돼지들도 무척 혼란스러울 것 같다. 작가들은 돼지를 사랑한다. 얄궂게도 도무지 배울 것이라곤 없어 보이는 돼지한테서 겸손한 깨우침을 얻게 만든다. 돼지 지도자 스노볼과 나폴레옹을 등장시켜 인간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한 '동물농장'(민음사)의 조지 오웰이 대표적일 것이다.

소설뿐 아니라 동화 속에서도 돼지는 맹활약을 펼친다. 삼겹살과 베이컨을 제공해 준 것만도 고마운데, 아이들에게 교훈과 재미까지 듬뿍듬뿍 나눠준다. 돼지해답게 첫 책으로 제이콥스가 쓴 영국의 옛이야기 '아기 돼지 삼형제'(삼성출판사)를 펼쳐보자. 돼지 삼형제를 만나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낸 엄마는 없을 터. 배에 힘주고 자신 있게 구연동화로 재연해 봐도 좋지 않을까.

지푸라기로 집을 지은 첫째 돼지, 어떻게 됐을까? 단골 악역 늑대한테 당하고 말았지. 가시덤불로 집을 지은 둘째 돼지, 어떻게 됐을까? 어김없이 나타난 늑대에게 또다시 당했지. 그럼 현명하고 부지런한 막내 돼지는? 차곡차곡 끙끙 벽돌로 집을 짓고 멋지게 악당을 물리쳤단다.

이쯤에서 돼지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조급해진 엄마들! "재미난 이야기를 읽고 즐거워진 아이에게 책에서 배운 교훈이 뭐냐고 캐물어서 흥을 깨지 말라"는 작가 크리스토퍼 폴 커티스의 충고를 듣고 한 박자 참으시길. 때가 되면 아이들은 막내 돼지보다 훨씬 더 성실하고 지혜롭게 자라날 테니까.

프레데릭 스테르의 '아기 돼지 세 자매'(파랑새어린이)를 펼치면 얘기는 역전된다. 편안한 걸 좋아하는 첫째 언니는 가진 돈을 몽땅 들여 호화스런 벽돌집을 샀는데, 그만 돼지로 변장한 늑대에게 꿀꺽. 나무집을 지은 둘째 언니 역시 늑대에게 한 방. 우리의 희망, 똑똑한 막내 돼지 아가씨는? 늑대 변장을 하고는 돼지 변장을 한 엉큼한 늑대를 지푸라기 집으로 유인해서 퍽퍽퍽! 막내 돼지에게는 청혼이 줄을 잇는다.

10세 이상의 어린이라면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의 원작인 월터 브룩스의 '탐정 프레디'(나들목)까지 만나보자. 돼지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면, 오늘밤 무슨 꿈을 꾸게 될지는 묻지 않아도 뻔할 테니까. 대상 연령은 어린이들과 사교육비에 휘청해서 돼지꿈에라도 기대고픈 엄마들.

임사라<동화작가>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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