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의톡톡히어로] 영국 해군제독 혼블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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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혼블로워' (C S 포레스터, 조학제 옮김, 연경미디어)는 무려 10권에 달하는 긴 시리즈물이다. 나폴레옹 전쟁 시대, 영국 해군 소속의 풋내 나는 열일곱 살 사관후보생 혼블로워의 이야기로 시작해 해군제독 혼블로워의 이야기로 끝날 때까지 그가 겪었던 바다와 해군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연히 군인의 이야기고 해양소설이다. 여자가 나오긴 하지만 로맨스는 소박하고,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용어 해설집을 뒤적여야 할 만큼 전문적인 해군용어들로 가득하다. 마치 해군들의 선상식량인 쉽 비스킷처럼 딱딱하고 싱겁다.

혼블로워 역시 멋대가리라고는 없는 남자다. 배에 올라타고 있을 때 뱃멀미를 하는 해군이다. 특정 분야에서는 가히 천재적일 정도로 번뜩이는 재능을 보이지만 (주로 전투에 관련된 부분이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주로 돈벌이나 세속적인 이득에 관련된 분야다) 요령도 없고 서툴다. 배에서 내렸을 때 그는 흔들리지 않는 땅에 적응 못하고, 안락한 육지의 생활에 불안함을 느끼는 천생 '뱃놈'이다. 그가 육지에서 하는 일 중에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있다면 해군들이 즐기는 도박인 휘스트 게임 정도다. 물론 거기에도 그 게임이 전략적인 사고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블로워가 약점투성이 주인공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시길. 무려 열 권이나 되는 그의 인생 항로에서 드러나는 약점이라고는 위에 열거한 저것 뿐이다! 바다의 싸움에서 그는 정말로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인다. 그 천재적인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위에 열거한 '사소한' 단점은 그야말로 '이거라도 없으면 외계인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끼워 넣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덕분에 그의 캐릭터는 좀 더 멋대가리 없어진다. 그는 불안한 요소가 없는 성실한 군인이고, 모든 면에서 정확한 지휘관이다. 혼블로워 시리즈의 명성을 먼저 듣고 이 인물을 만난다면 당연히 의문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 재미없는 양반이 무슨 재주로 긴 이야기를 끌어나갔을까? 아니, 그냥 끌어나간 것만이 아니라 무려 성공까지 해서 해양소설의 명저로 자리 잡았을까?

나는 그 비밀에 대한 해답을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나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강렬한 조미료 같은 자극적인 매력이 아니라 밥이나 빵처럼 싱거운 매력을 필요로 할 때도 있다고 말이다. 분명히 짧은 시간 힐끔 보고 매력을 느끼기엔 혼블로워는 너무나 '전형적인 천재 군인' 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긴 항해를 해야만 한다면 나는 잭 스패로의 배보다는 혼블로워의 배를 타는 편을 택하겠다. 그 편이 '오래'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진산<무협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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