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나이" 국립국악원|전통예술 활성화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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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개원 40돌을 맞은 국립국악원은 한국 전통 예술 보존·전승·보급의 총 본산으로서 과연 제구실을 하고 있는가. 그 외형과 위치만큼이나 평소「보름사람들의 정서생활」과 동떨어진 채 늘 한산한 편이던 국악원이 마흔 돌 기념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보기 드물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발길을 불러모으고 있다.
상설 국악공연이 있는 토요일 오후의 일부 관객들과 전시된 악기를 이따금 견학하러 오는 학생들을 빼면 국악원을 찾는 일반 방문객은 매우 드문 실정. 그러나 지난 8∼17일의 40주년기념 특별공연·입장객은 평균 4백 명 정도로 국악원 소극장이 보기 드물게 꽉 찼고, 평일에도 약 70명씩 기록영화와 사진을 보러 오고 있다.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국악원이 일시적 잔치분위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일반인들에게도 가깝게 느껴지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는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악원은 23일과 24일「미래를 준비하는 국립 국악원의 역할과 기능」을 주제로 특별 심포지엄을 열어 활성화방안을 모색한다. 진행방식은「예술행정 조직체로서의 국립국악원」「국제화시대의 국립국악원」「정보화시대의 국립국악원」「대중화시대의 국립국악원」등 분야별 주제발표 및 논평으로 꾸며졌다.
그러나 제시된 주제에 비해 발표자들의 논문은 국악원의 직접적인 역할이나 기능과 관계된 내용이 매우 드물고 대체로 일반론에 그침으로써「해답」에 대한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다.
「전통문화 예술 자료의 효율적 이용방안」에 대해 음악평론가 김춘미씨가 각종 전통 음악관계 자료들을 폭넓게 수집·정리해서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전문도서관 설립을 제안한 정도. 또「전통문학예술의 대중화 현황과 비평」에서 연출가 허 규씨는『그간의 대중화 노력이 전통 문화예술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는 만큼 신중한 방향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근래 농악이나 사물놀이 등 일부 전통 예술공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는 것 때문에 전통예술의 미래를 낙관하는 것은 큰 오산이며, 기본 교육을 통해 대중이 전통 예술을 이해하고 점점 더 가까워지도록 유도하지 않는 한 일부 흥겨운 국악공연에 대한 일시적 관심은 전통예술 전반으로 확대되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국악원이 제구실을 하기 어려운 이유들은 국악원 진흥과 이해노씨의 석사학위논문(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에 잘 나타나 있다. 우선 행정체계가 일반행정과 예술 행정으로 나뉘지 않아 전문성이 없는 것이 그 첫 번째 문제. 또 예술의 창조·발전에 필수적인 부서의 신설 및 기능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음향·미술·영상·장치 등 무대예술 업무가「무대 계」라는 작은 조직으로 통합 운영되고 있어 각 기능의 고유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무대 미술계 , 무대 기계 계·소품·의상 계, 음향·영상 계, 조명 계 등으로 세분화해서 전문성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악원의 공연행정 인력도 공연 업무를 원활히 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악원이 88년 2월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이래 치른 자체공연만 해도88년 1백79회, 89년 1백43회에 이르는데 이 모든 공연이 13명(그중 악기·소품·의상관리·매표 담당자를 뺀 기획·제작·진행 인원은 8명)에게 맡겨져 있다.
이런 여건에서 언제 누구든 국악원에 가보면 볼거리·들을 거리가 풍부하고 친숙한 문학공간이 되도록 할 수는 없는 만큼 국악원은 현재의 실태와 문제점부터 철저히 점검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게 국악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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