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서로의 울림에 감전 … '영혼의 화음' 연주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제대로 된 흑인음악을 추구하는 몇 안 되는 가수로 꼽히는 바비 킴(34.본명 김도균.(左)). 시각장애를 딛고 하모니카 연주자로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전제덕(33.(右)). 각자의 장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이들이 만났다. 최근 각자 내놓은 2집 앨범에서 '장르적 진화'를 시도한 이들은 서로의 앨범에 한 곡씩 피처링 해주는 공동작업을 통해 앨범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이들이 신년 벽두에 말하는 음악과 삶 이야기-.

둘은 만나자마자 지난해 말 타계한 '솔(Soul)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에 대한 얘기부터 꺼내놓기 시작했다.

"노래 부르며 신나게 춤추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많은 뮤지션에게 영향을 줬던 분인데…."(바비 킴)

"맞아요.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등 그에게 영향받지 않은 흑인 뮤지션은 거의 없을 거예요. 흑인음악의 표상이자 교과서였죠."(전제덕)

이들의 공동 작업은 단순한 피처링을 넘어서는 음악적 울림을 갖는다는 것이 음악계의 평가다. 이들의 음악적 교감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솔'이다. 한(恨)과 슬픔으로 표현되는 솔의 진정성을 한국적 정서에 오롯이 담아냈기에 그들은 통했고, 그 울림은 더욱 컸다. 흑인 노예들의 리듬에서 파생된 솔이 시대가 흐르며 형태는 변해왔지만, 솔에 내재돼 있는 한과 슬픔은 원형질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그들의 믿음이다.

"한 대중음악 시상식 때 전제덕씨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장면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영혼에서 나오는 소리를 접한 것은 아버지(트럼펫 연주자 김영근씨)의 트럼펫 연주 이후 처음이었죠. 제가 원래 까다롭고 마음을 쉽게 안 주는 편인데, 제덕씨는 제 마음을 움직였어요."(바비 킴)

"바비 킴은 국내에서 정통 솔 창법을 구사하는 유일한 가수예요. 목으로만, 테크닉으로만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묵직하게 진정한 솔의 정신을 표현하는 가수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함께 작업해 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일찍 찾아왔죠."(전제덕)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다'는 말처럼 서로를 의식해 왔던 이들은 지난가을 블랙가스펠 그룹 '헤리티지'의 콘서트에서 처음 만나자마자 바로 뜻이 통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곧 나올 자신의 앨범에 피처링을 해 달라고 말을 꺼낸 것.

바비 킴의 2집 앨범 'Follow Your Soul'의 타이틀곡 '파랑새'에 전씨의 하모니카 연주가 흐른 것도,전제덕의 2집 앨범 'What Is Cool Change'의 두번째 트랙 'Two Stories'에 바비 킴의 보컬이 하모니카 연주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도 이 같은 의기투합의 결과다. 두 개의 이야기라는 뜻의 'Two Stories'는 말 그대로 바비 킴과 전제덕, 두 뮤지션이 가진 음악세계의 만남을 노래한 것이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말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점점 속 깊은 음악적 얘기까지 풀어놓는 광경이랄까요. 노래 끝 부분에 보컬과 하모니카 연주가 합쳐지는 것처럼 결국 두 사람은 음악적으로 통하게 되죠. 처음부터 보컬 바비 킴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에요."(전제덕)

전제덕의 'Two Stories'에서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 이들은 바비 킴의 '파랑새'에서는 완전한 음악적 합일을 이룬 듯한 선율을 만들어낸다. 누가 하모니카 연주를 했는지, 누가 보컬을 맡았는지 구분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노래는 절제된 어쿠스틱 사운드에 솔 음악의 원형질인 '영혼의 울림'을 실어 보낸다.

"노래를 듣자마자 바비 킴이 이 노래를 통해 뭔가 얘기하려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바로 왔어요. 그래서 녹음도 30분 내에 끝냈지요."(전제덕)

"노래 잘했다는 얘기는 없고, 다들 연주가 훌륭했다고 하던데요. 전제덕의 곡을 바비 킴이 부른 것 아니냐면서…(웃음)"(바비 킴)

'파랑새'는 바비 킴 본인의 아픈 사랑을 담은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노래를 포기할 뻔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느꼈던 음악에 대한 사랑을 처연한 멜로디에 담은 노래다.

" '파랑새'는 희망이자 곧 제 음악이에요.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 때문에 음악을 포기하려 했던 그때의 슬픈 정서를 노래에 담았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솔'을 선보인 전제덕. 한 뼘 남짓한 하모니카 하나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는 그지만, 솔에 대한 애착은 변치 않는다.

"우리 민요도 솔처럼 짙은 슬픔이 내재돼 있죠. 삶과 투쟁해야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절박한 소리라고 할까요. 시대가 변하면서 솔이 다소 유연해졌을지 몰라도, 시대의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솔의 진정성은 영원할 겁니다."

이들이 전하려 하는 솔의 메시지는 슬픔과 한을 함께 나누고, 슬픔 속에서 희망을 찾자는 것이다.

"슬픈 과거를 잊지 말되 미래를 밝게 생각하자는 겁니다. 힘든 현실 앞에 무릎 꿇지는 말자는 것이죠."(바비 킴)

"솔은 음악적 장르라기보다는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음에는 바비 킴과 함께 피처링보다 더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전제덕)

글=정현목 기자<gojhm@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