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아랍의 영웅' 후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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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세계의 패권을 꿈꾼 풍운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3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1월 5일 반인도적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지 두달도 안돼서다. 변호인단의 항소도 감형을 위한 국제사회로의 호소도 결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명령 한 마디로 수백, 수 천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던 후세인이었지만 목조 교수대에서 숨이 끊길 때까지 매달려 마지막 숨을 헐떡거려야 했다. 강력한 바트당 친위세력을 구축해 온갖 화려한 최고급 생활을 누렸지만 2003년 12월 체포 이후 독방에서 2년 이상 쓸쓸히 지내다 세상을 떠나야했다.

◇'충돌하는 자' 사담=후세인은 1937년 4월 28일 바그다드 북부 티크리트 지방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사담이라는 이름은 숙부가 지어 준 이름으로 '충돌하는 자', '맞붙어 싸우는 자'라는 의미다. 당시 사담 일가의 어려웠던 시절을 반영한 이름이었다. 어린 자식의 양육을 위해 어머니는 사촌인 이브라힘 하산과 재혼하는 등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계부의 욕설과 구타를 받으면서 후세인은 반발심은 물론 권력에 대한 집착을 키워나갔다.

전쟁광, 국제 깡패, 악의 축, 과대망상증 환자, 죄수를 상대로 생화학무기 실험한 무자비한 인간 등으로 서구사회의 비난을 받아온 후세인. 그는 한마디로 산전수전을 다겪은 정치지도자다. 친영국정권에 바트당 행동대원에서 정치에 입문했지만 내부 권력투쟁이 증폭되면서 후세인은 총리 암살 계획으로 체포돼 감옥에 수감됐다. 간수를 매수해 탈옥에 성공한 후세인은 결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63년 고향출신 바트당원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시리아와 이집트서의 망명을 접고 귀국해 권력기반을 확고히 구축해나갔다. 그의 후견인인 바크르 장군이 무혈쿠데타에 성공한 후 79년 사망하자 후세인은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바트당 사무총장, 혁명평의회 의장, 그리고 공화국 대통령 선출돼 2003년 미군에 체포되기 전까지 권좌에 있었다.

◇"미치광이보다는 망나니가 낫다"=후세인이 정권을 강화하는 데에는 미국의 개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90 걸프전 이전까지는 후세인 정권은 미국의 다양한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여 대규모 군사적.정치적 지원을 받았다. 미국은 공산주의 소련의 견제세력으로서 그를 지지했고, 이후 이란에 이슬람혁명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미치광이보다는 망나니가 낫다"는 이유로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한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란과의 전쟁을 부추겼다. 80년부터 88년까지 8년간 이란과의 전쟁을 통해 과격 이슬람 혁명의 확산을 차단하여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은 또 이라크를 통해 중동 석유의 안정적 확보와 지역 정세안정을 도모했다.

그러나 그의 통치 스타일도 장기집권을 도왔다. 후세인은 스탈린식의 억압적인 권력유지를 꾀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약 60여 명의 혁명평의회 의원들을 공개처형하고 그 장면을 대중에게 공개할 정도로 공포정치를 행했다. 반면 국민심리를 잘 파악하고 이용하는 지도자로 유명했다. 그는 비천한 서민 태생을 강조하며 국민의 동정과 호응 이끌어 냈다. 국민의 불만이 있을 때마다 국민을 위한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하곤 했다.

◇'순교(?)한 후세인="조국과 알라(하나님)를 위해 순교하겠다"던 그의 대중에 대한 마지막 메시지는 아랍권 과격세력의 뇌리에 남게 될 것이다. 고향 인근 흙구덩이 속에서 구차한 모습으로 미군에 체포된 이후 추락했던 후세인은 명예를 어느 정도 회복하고 세상을 떠났다. 법정서 깔끔한 모습으로 미국과 친미정부에 당당히 맞서며 아랍권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라크의 살라딘(십자군 전쟁의 영웅), 아랍인의 긍지를 살인 혁명가, 아랍 자존심의 대변인이라던 집권 당시 칭송을 잊지 않고 그는 당당히 죽음을 맞서는 자세로 어느 정도 회복했다. 중동권 반미 과격세력에 '저항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아랍인들의 그의 무자비한 독재정치를 비난한다. 빈 라덴도 자신의 육성 테이프에서 이슬람 원칙을 무시한 폭군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농부의 아들에서 혁명가로, 그리고 최고 권력자에서 반인륜 범죄자 신세로 전락한 후세인. 한때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아랍권 지도자로 부상했던 후세인. 그러나 시대 흐름을 잃지 못하고 역사의 희생물이 된 불운한 지도자가 되고 말았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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