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서 썩지 않게 …" 대선 뒤집기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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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얼굴) 대통령의 '작심 발언' 후폭풍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22일 "장가 빨리 보내는 정책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라는 노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설명하던 중 한 '군 복무기간 단축' 발언은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강타했다. 한나라당은 오래전부터 노 대통령이 낮은 여론지지율을 일거에 반전시키기 위한 대선용 노림수를 감춰두고 있다고 경계해 왔다. 그중 하나가 군 복무 문제였다. 안상수 의원은 18일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노 정권과 집권 여당이 비장의 승부수를 던져 대선 판도를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며 "젊은이들과 그 가족들을 열광시킬 히든 카드로서 현행 징병제를 모병제(직업군인제도)로 바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고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군 복무기간 단축 발언이 돌출한 것이다.

"대선용 선심성 발언"(유기준 대변인)이라는 한나라당의 반박은 정해진 수순이다. 발언 파장은 한나라당의 우려대로 간단치 않다.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이 공개된 뒤 두 시간 만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찬반 댓글이 600여 개나 올랐다. 안 의원의 추산에 따르면 투표권을 갖는 입영 대상자(19~22세) 수는 130만 명에 달한다.

청와대는 "정치적 고려와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군 복무기간 단축과 독일식 사회복무제도 방안 등이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미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군 복무를 선호하도록 만들기 위한 복무체계 검토는 이런 차원에서 준비되고 있다"며 8월 발표한 '비전 2030'의 50대 핵심과제와 '국방개혁 2020' 계획에 이미 포함돼 있다고도 했다.

현재 군 복무기간 단축과 독일식 사회복무제 도입 방안 등은 청와대와 국방부 주도로 연구팀이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9월부터 검토해 왔다"고 말했다. 당장은 군 복무기간을 현행보다 4~6개월 줄이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한다.

특히 복무기간 단축은 별도 입법 없이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결심만으로 가능하다. 병역법 제19조에 '정원 조정이 필요한 경우 6개월의 기간 내에서 단축할 수 있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병무청 관계자는 "국무회의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문제는 군 전력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다. 군 복무기간을 현행보다 1개월만 단축해도 1만 명의 병력감소로 이어진다. 국방 전문가들은 "복무기간을 일방적으로 줄이면 군 병력의 전체적인 질이 낮아질 수도 있다"며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력 공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자칫 대선과 맞물려 '안보 우선 논리'와 '평화 우선 논리'를 앞세운 거대한 이념대결이 펼쳐질 수도 있다.

박승희 기자,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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