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심전도·자궁수축 "진짜 임신부랑 똑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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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 학생이 로봇 임신부가 출산한 신생아 인형의 입에 흡입기를 넣어 이물질을 제거하는 실습을 하고 있다.

"23세 임신부가 진통을 하며 응급실을 통해 분만장에 내원했습니다. 임신한 지 36주, 혈압은 152/125, 심장박동수가 91로 위험한 상태입니다."

임신부의 몸에 연결된 모니터에서 경보음이 울리면서 전공의의 손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하이드랄라진(혈압강하제)을 투여했습니다. 혈압이 130/100으로 안정됩니다."

전공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전문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태아 심장박동수는 정상인가요.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 50으로 너무 낮습니다. 태아가 위험합니다. 산소를 주입해야겠습니다."

전공의가 서둘러 산모의 코에 산소주입기를 설치한다. 산소가 들어가자 평행선을 긋던 태아 심장박동수를 알리는 그래프가 아래.위로 변이를 보이며 정상을 찾는다. 모니터에선 박동수가 150을 가리키고 있다. 전공의가 진땀을 흘리며 아기를 받고 있는 이 장면은 실제 분만실 상황이 아니다. '아기 낳는 로봇 인형'으로 학생들이 실습하는 모습이다.

경희대병원은 최근 분만실습용 로봇 두 대를 도입해 학생들에게 선보였다. 크기는 실제 사람과 같고, 금발 여성으로 실물과 똑같은 분만대에 누워 있다. 분만실습장 벽에 걸린 모니터도 로봇 임신부와 태아의 건강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자궁경부가 7㎝ 정도 열렸습니다. 머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다급해진 전공의가 아기가 쉽게 나올 수 있도록 머리를 받쳐들고, 이어 조심스럽게 팔과 다리를 빼낸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전공의는 흡입기를 이용해 로봇 신생아의 입에서 호흡을 막고 있는 분비물을 제거했다. 이어 로봇 신생아의 배에 달려 있는 탯줄을 자르고 태반을 꺼낸다.

산부인과 전문의 정의 교수는 "로봇 임신 시뮬레이션에는 분만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출산 프로그램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아기가 다리부터 나오는 둔위 분만, 태아가 뱃속에서 위험에 빠지는 분만 지연, 심지어 제왕절개 수술까지 가능하다. 특히 실습생은 로봇 임신부의 혈압.심전도.호흡.산소포화도.자궁 수축 정도를 모니터를 통해 시시각각 점검하고, 심장이 멎는 응급상황에선 심장충격기 등을 이용해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

이처럼 컴퓨터로 제어하는 분만용 로봇 임신부를 도입한 것은 경희대병원이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미국 고마드 사이언티픽사에서 2000년 개발돼 미국에만 400여 대가 보급됐다. 대당 가격은 2000만원.

정 교수는 "요즘 임신부와 가족은 교육받는 학생들이 진찰이나 분만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꺼린다"며 "아기 받는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실습용 로봇을 도입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joins.com ‘조인스 TV’에서 동영상으로 로봇 임신부의 분만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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