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풍 심한 건설부 인재난/이춘성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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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건설부내에는 요즘 초토화란 말이 나돌고 있다.
일을 할만한 사람들이 몇개월새 이런저런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작년 하반기 사정바람 이후 3,4명의 국장급 이상이 날아간데다가 일부는 청와대 비서실의 부름을 받고 들어갔다.
이 때문에 5명의 과장들이 한꺼번에 「관리의 꽃」이라는 국장승진을 하는 「경사」가 있었다.
그런데도 승진자들에 대한 축하보다는 쑥덕공론이 무성했다. 다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지만 사람에 비해 자리가 커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이번에는 수서바람이 불어 장·차관과 수석국장이 그 바람을 탔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건설부내는 물론 건설부의 중차대한 역할을 맡고 있는 행정부의 다른 부처에서 조차 우려의 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제 인재난 정도가 아니라 인력난의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자리는 많지만 사람이 없다는 얘기인 셈이다.
국토계획·주택·도로·상수도 등 이른바 쾌적한 삶의 제공이라는 막중한 임무수행을 본격 추진해야하는 건설부가 인재난에 봉착하게된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인재양성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건설부의 현판을 내건지 30년이 지났지만 건설부출신 장관은 단한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차관조차 겨우 한명만이 나왔을 뿐이다.
사정이 이러니 열성을 다해 정열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오히려 조소와 질시의 대상이 돼왔다. 엘리트관리를 꿈꾸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젊은 두뇌들이 건설부근무를 기피하는 것도 이같은 부처내 사정과 결코 무관치 않다.
악순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리·부정사건이 터질 때마다 건설부가 연루되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건설부의 이같은 속사정을 꿰뚫어 보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당연시」할 정도다. 열심히 일해봐야 뒤봐주는 「힘」이 없으면 한계가 보이기 때문이라는 동정론인 셈이다.
『나자신의 출세도 출세지만 그래도 민족과 국가를 위해 일하려 했으나 이제는 건설부에 근무한다는 말조차 꺼내기 민망하다』는 고시출신 젊은 사무관의 자조가 「3등부처」 건설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촌철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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