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정치는 성군정치"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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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先軍)정치'는 발음에 따라 '성군(聖君)정치'로 들리는데, '임금님의 정치'를 토론하는 자리에 오신 것만으로도 경하드린다."

8일 '선군정치 대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삼석(43.전 의문사위 조사관)씨가 한 말이다. 이날 서울 기독교회관 강당에서 열린 토론회는 6.15 공동선언실천 청년학생연대, 남북 공동선언실천연대,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숭실대 총학생회가 주최했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30여 분 동안 노골적으로 북한 선군정치에 대한 찬양 발언을 쏟아냈다.

김씨는 "선군정치의 핵심은 사회주의를 지키고 있는 이북과 제국주의의 거두인 미국 사이의 첨예한 대결"이라며 "이남이나 이북이나 같은 민족인데 같은 민족이 강력한 힘을 갖는 것에 대해 극소수를 제외하곤 다 찬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 이북을 침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지만 북한의 강력한 선군정치를 바탕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인정하든 않든 북한은 핵 보유국이 됐기 때문에 핵 군축회담이 불가피하다"며 "이북의 핵과 미사일을 뒷받침하고 있는 선군정치와 6.15 공동선언으로 인해 비로소 분단을 종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강변했다. 이어 "선군정치의 근본적 의미는 한반도의 자주성과 통일에 있는 것이고, 단지 그것의 외피로서 핵과 미사일이 나타났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질의 응답에서도 "군인만이 가지는 육탄정신이나 총폭탄 정신의 도덕적인 풍모와 기풍이 이북 사회 전반을 이끌어가는 선군정치의 방식" "북한의 핵실험으로 미국은 무릎 꿇다시피 대화 재개에 나섰는데 이는 세계 군사지도를 다시 써야 한다는 의미""서구 정치를 바라보는 이북의 시각에는 긍지와 자부심이 담겨 있다"는 등의 선군정치 미화 발언을 이어 갔다.

김씨는 1993년 북한 간첩에 포섭된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최기영 민노당 사무부총장의 처남이다.

또 다른 발제자로 나온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원은 김씨의 주장에 대해 "북한을 이해하는 데 과소평가도 곤란하지만 과대평가도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씨는 "60년 이상 지속한 제국주의와 세계화 책동으로 인해 이북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고난의 행군'을 통해 이를 이겨냈다"고 반박했다.

◆ 탈북자 항의 소동=이에 탈북자 K씨(29)가 발언을 자청해 "참다 못해 일어섰다"며 "내가 '고난의 행군'시기에 북한군에 있었는데 당시 북한은 돈도 있었고 식량도 있었지만 군을 아끼기 위해 국민을 굶겨 죽였다. 어디서 거짓말을 하느냐"며 고성을 질렀다. K씨는 "선군정치는 북한 주민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 80년대 남한에서 민주화 투쟁을 한 사람들이 북한의 심각한 인권 문제에는 왜 침묵하느냐"고 반박했다. K씨는 김씨에게 "여기에 학생들도 와 있는데 어떻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짓말만 할 수 있느냐"고 거칠게 따지다 주최 측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토론회엔 현대사연구소 김진환 상임연구원, 한국민원연구소 류옥진 상임연구위원(이상 토론자)을 비롯해 일반 학생.시민 50여 명이 참석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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