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적에 전투적인 언행 '맨주먹' 강경 외교 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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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4일 결국 낙마했다. 상원 인준을 거치지 않은 채 대사직을 수행해 온 지 16개월 만이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직설적이고 전투적인, 일명 '맨주먹(bare knuckle) 외교'를 선보이며 대북.대이란 강경 노선을 주도했다. 특히 북한을 비롯한 이란.시리아.쿠바 등 '미국의 적'에 대한 비판에는 거침이 없었다. 2003년 북핵 협상 당시 김정일 위원장을 '폭군'으로 부르다 북한의 격렬한 반발로 대표단에서 빠지기도 했다. 이란과 북한 등을 겨냥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만들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전통적인 유엔 주재 대사의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미 정계에 유엔의 처지를 설명하는 역할보다는 오히려 앞장서서 유엔을 비판하고 개혁을 요구했다. 특히 "유엔 사무국 빌딩의 10개 층이 사라져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발언은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하지만 안보리 대사들 사이에선 후한 평가를 받았다. 전투적 스타일과 함께 유엔에 대한 해박한 지식까지 갖춘 덕에 대북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휴전을 이끌어내는 등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런 그를 유엔 대사로 지명하려 하자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의 일부 의원까지 그의 업무 스타일을 문제 삼았다. 결국 부시는 지난해 8월 의회의 휴회 기간 중 대사 지명을 하는 방식으로 인준 절차를 건너뛰었다. 하지만 회기가 바뀌는 내년에도 볼턴이 계속 대사직을 유지하려면 상원 인준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강력한 거부 의사를 보였고 부시는 결국 볼턴을 재지명하지 않는 형식으로 충돌을 피해갔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들은 그의 사임을 네오콘의 퇴조와 함께 부시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볼턴의 후임으로는 잘마이 칼리자드 이라크 대사와 함께 짐 리치 하원 동아태소위원장 등 중간선거에서 낙선한 공화당 인사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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