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노동법원 설치” 주문에…대법원 숙원 해결되나 환영 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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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스물다섯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노동현장'을 주제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스물다섯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노동현장'을 주제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노동 사건만 전담하는 노동법원 신설을 깜짝 주문하자 법원 내부에선 “예상치 못했지만 적극 환영”이란 반응이 나왔다.

법원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대통령실 또는 정부와 미리 교감이 있었던 사안은 아니다”면서도 “윤 대통령이 노동법원 설치에 힘을 실어준다면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개최한 민생토론회에서 “고용노동부와 법무부가 기본 준비를 하고 사법부와도 협의해서 임기 중에 노동법원 설치에 관련된 법안을 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이 사실상 임기 내 설치를 약속함에 따라 노동법원이 당초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 ‘장기 과제’에서 ‘우선 과제’로 급부상하는 모습이다. 노동법원을 설치하려면 법원조직법 등 법 개정이 필수다. 법안 발의 권한이 없는 사법부로선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쳐 정부안 구상에 함께 나설 전망이다.

노동법원은 노동 관련 민사·형사·행정소송 사건 등을 노동 전문 법원이 전속 관할하는 시스템이다. 독일·프랑스·영국 등을 보면 노사 대표자 등이 추천한 ‘참심관’이 직업 법관과 함께 판결 과정에 참여하는 게 큰 특징이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왼쪽부터)과 조희대 대법원장,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61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박성재 법무부 장관(왼쪽부터)과 조희대 대법원장,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61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법원 내부에 노동법원 설치 공감대가 큰 것은 노동 관련 권리구제가 전문적이고 신속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노동분쟁 해결 절차는 이원화돼있다.

부당노동행위·부당해고구제 신청 등 노동사건은 먼저 지방·중앙 노동위원회 판단을 거치는데 당사자가 이 판정에 불복하면 사건은 법원으로 넘어온다. 일반 분쟁이 ‘3심제’로 해결되는 것과 달리 노동분쟁은 사실상 ‘5심제(서울지방노동위원회 → 중앙노동위원회 → 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를 거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근로자가 체불 임금 반환 등 별도의 민사소송을 걸게 되면 최종 권리 구제까지 시간은 더욱 늘어진다.

윤 대통령도 “해고가 공정했냐 아니냐, 정당하냐 아니냐 뿐 아니라, 노동형법을 위반해서 어떤 민사상 피해를 입었을 때 원트랙으로 같이 다뤄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경 법원 판사는 “법원은 법관들의 순환보직으로 인해 노동사건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사건 처리가 더욱 장기화하는 측면이 있다”며 “노동법을 깊게 이해하는 판사들이 사건을 맡아야 하는데, 일반 민사법을 보는 시각으로 사건을 다루다 보니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온다는 시각도 있어왔다”고 설명했다.

‘노동법원’ 신설은 대법원 내에서 오랫동안 표류한 과제다. 진보 정부가 들어섰을 때 반짝 개진됐다가 노·사·정 간 이견으로 묵혀지곤 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의 제안이 모두 좌초했다. 18~20대 국회에서 야권 의원들 주도로 꾸준히 발의된 유사 법안들도 번번이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선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3년 4월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이 역시 폐기를 앞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건은 남은 윤 대통령 임기 동안 얼마큼 추진력이 실릴지다. 신설 비용 문제부터 만만찮다. 최강욱 의원의 노동법원 설치법안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5개 고등노동법원과 8개 지방노동법원 등 13곳 노동법원 설치를 가정할 경우 2025년부터 5년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정은 최소 119억원에서 최대 1조1389억원이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윤 대통령이 설치를 주문한 것은 기획재정부를 설득하겠다는 뜻 아니겠나”며 “진보 정권에서도 번번이 추진력 없이 무산된 과제를 윤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생토론회 현장에서 임금 체불 피해자의 절절한 호소에 대해 윤 대통령이 대응 방안을 밝힌 것”이라며 “향후 법무부 및 사법부와 논의해 노동법원 설치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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