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인질 놔주면 바로 휴전"…하마스는 숨진 인질 영상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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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가 인질을 석방하면 내일이라도 휴전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1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같이 말했다. 휴전 협상에서 ‘인질 석방’을 강조해온 이스라엘 측의 입장을 사실상 대변한 셈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모펫 필드에서 에어포스원을 타고 출발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모펫 필드에서 에어포스원을 타고 출발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면 이날 하마스는 영국계 이스라엘인 인질의 영상을 공개하며 자신들의 휴전 요구안 수용을 압박했다. 하마스 측은 이 인질이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다친 뒤 상처가 악화해 숨졌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막바지 휴전 조율 과정에서 미국·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치열한 신경전을 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 워싱턴주(州) 시애틀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이스라엘은 (휴전이) 하마스에 달렸다고 말했다”며 “만약 (하마스가) 원한다면 우리는 (휴전 협상을) 내일이라도 끝낼 수 있고, 내일부터 휴전이 시작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일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을 반대하며 무기 지원 중단을 시사했었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내 최남단 지역인 라파에는 현재 130만 명 이상의 피란민들이 몰려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스라엘군이 대규모 공격에 나설 경우 민간인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미국이 제동을 걸기 위해 무기 지원 중단 카드를 들고나온 것이었다.

1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의 라파에서 밴을 타고 이동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AF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의 라파에서 밴을 타고 이동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AFP=연합뉴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홀로 서야 한다면 홀로 서겠다”며 반발하자, 바이든 대통령이 그간 이스라엘 측이 강조해온 ‘인질 석방’ 문제를 꺼내며 달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이스라엘 딜레마' 빠진 바이든

이와 관련,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컬럼비아·예일 등 미 주요 대학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거세게 일며 청년 표심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민주당을 지원해온 유대인 큰손들이 “바이든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등 으름장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참석하는 선거자금 모금 행사장 밖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참석하는 선거자금 모금 행사장 밖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이스라엘계 미국인 거부 하임 사빈은 지난 8일 백악관 고위 관계자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에게 유대인들의 입장을 담은 이메일을 전달했다. 사빈의 이메일엔 “(미국엔) 하마스를 아끼는 무슬림 유권자보다 이스라엘을 아끼는 유대인 유권자가 더 많다는 걸 잊지 말라”는 등 공격적인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백악관이 친팔레스타인 시위 등 반유대 정서를 방치할 경우 사실상 선거자금 지원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됐다. 사빈은 지난 2월 민주당 텃밭인 로스앤젤레스에서 ‘바이든 재선 지지 선거자금 모금 행사’를 개최하는 등 바이든 캠프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국무부 "이스라엘에 무기 계속 지원" 

실제로 미 정부의 기류도 바뀌고 있다. CNN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지난 10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에 무기를 계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보고서에서 “이스라엘군이 미국이 지원한 무기를 국제인도주의법에 부합하지 않게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확정할 순 없다”며 “이스라엘 측이 (법에 부합하도록) 사용하겠다고 확약했으며, 이는 신뢰할 만하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지난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군용 차량들이 가자지구 국경 철책 근처에 모였다. EPA=연합뉴스

지난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군용 차량들이 가자지구 국경 철책 근처에 모였다. EPA=연합뉴스

이와 별도로 바이든 행정부는 하마스 지도부의 은신처 등 민감한 정보를 이스라엘 측에 제공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는 소식통을 인용해 “하마스 지휘부를 겨냥한 제한적이고 표적화된 공격이 가능하도록 (민감 정보를) 지원해 대규모 민간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라파 전면전은 피하자는 것”이라고 11일 전했다.

이스라엘 측도 이런 안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스라엘이 비공개 논의에서 미국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약 80만 명의 민간인을 대피시키기 전엔 이스라엘군이 라파로 진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고 신문에 말했다.

'인질 영상'으로 압박하는 하마스 

하지만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휴전 협상에서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인질 석방’ 등 어떤 유화책도 일절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11일엔 하마스 군사조직인 알카삼 여단이 영국계 이스라엘인 인질인 나다브 포플웰(51)이 등장하는 10초 분량의 영상을 공개하며 이스라엘 측을 압박했다. 해당 영상에서 초췌한 모습의 포플웰은 “시간이 다 돼 간다. (이스라엘)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이스라엘 측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마스가 11일(현지시간) 공개한 인질 영상. 하마스 측은 영국계 이스라엘인 나다브 포플웰로 이스라엘군의 공습 영향으로 숨진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알카삼 여단 공개 영상 캡처

하마스가 11일(현지시간) 공개한 인질 영상. 하마스 측은 영국계 이스라엘인 나다브 포플웰로 이스라엘군의 공습 영향으로 숨진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알카삼 여단 공개 영상 캡처

하마스 측은 포플웰이 한 달여 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다쳤으며, 상처가 악화하면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인질 관련 정보와 영상을 추가로 공개하겠다”고 했다.

앞서 하마스는 전날 성명을 통해 “(자신들이 수락한) 휴전안을 이스라엘이 거부해 휴전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 중단 협상 전략에 대해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들과 협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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