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2년치 비' 하루에 쏟아졌다?…'날씨조절' 한국 기술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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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양양국제공항 활주로에 세워진 국립기상과학원의 기상항공기 '나라호'. 좌측 날개에 구름씨를 뿌리는 12발의 연소탄이 장착된 모습. 양양=정은혜 기자

3일 양양국제공항 활주로에 세워진 국립기상과학원의 기상항공기 '나라호'. 좌측 날개에 구름씨를 뿌리는 12발의 연소탄이 장착된 모습. 양양=정은혜 기자

지난달 사막 도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2년치 비가 하루에 쏟아졌다. 이를 두고 UAE가 주력해 온 인공강우 실험이 원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기상학자들은 “폭우를 내리게 하는 건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일축했지만, 이런 의혹이 나올 만큼 UAE는 인공강우 기술에 힘을 쏟고 있다. 5대의 기상항공기를 보유한 UAE의 연 인공강우 실험은 연 300회에 달한다. UAE 국립기상센터는 “70년 간 기술을 축적한 끝에 최대 구름의 강우량을 최대 25% 증가시킬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전세계가 기상 재난을 방지하는 ‘날씨 조절’(기상 조절·Weather modification) 기술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구름에 응결 촉매제(구름 씨앗으로 불리는 요오드화은·염화나트륨 등 미립자)를 뿌려 강우량을 증가시키거나, 큰 우박이 생성되지 않도록 비구름에 영향을 주는 기술이다. 전세계 37개국이 15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적도에 가까운 중동이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인공강우에, 캐나다·미국 등 중위도~고위도 선진국들은 우박 억제 기술을 개발하거나 이미 사용하는 중이다.

韓, 인공강우 실험 성공율 65%→ 86%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한국은 기초 단계인 인공강우 기술에 첫 발을 떼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국립기상과학원은 1대의 소형 기상항공기와 지상 연구 시설(구름물리실험챔버)로 인공강우 실험 성공률을 2020년 65%에서 2023년 86%로 올렸다. 2020~2023년 인공강우 실험 결과, 실험 한 회 평균 서울의 1.5배인 약 930㎢에 1.3㎜의 비를 더 내리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으로는 120만t(톤) 수준이다.

기상청은 지난 2일 강원도 평창의 구름물리선도연구센터에서 인공강우 실험 시연회를 열고 현재 한국의 날씨조절 기술 현황을 설명했다. 이날 센터 마당에서는 국립기상과학원의 실험 드론이 ‘구름 씨앗’을 담은 연소탄을 싣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드론이 일정 고도에 오르자 국립기상과학원이 연소탄을 터뜨렸다. 불꽃과 함께 흰 연기가 5분 간 하늘에 퍼지자 차주완 국립기상과학원 기상응용연구부 부장은 “비행기가 비구름 위에서 (시연 장면처럼) 구름 씨앗을 뿌리면 빗방울이 생성된다”고 설명했다.

2일 강원 평창군 구름물리선도센터. 실험 드론이 연소탄을 터뜨리며 공중에 구름씨를 살포하는 모습. 평창=정은혜 기자

2일 강원 평창군 구름물리선도센터. 실험 드론이 연소탄을 터뜨리며 공중에 구름씨를 살포하는 모습. 평창=정은혜 기자

기상청은 현재 기술로는 맑은 날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지만, 수증기를 많이 머금은 대기와 비구름이 형성돼 있을 때 강우량을 증가시키는 증우 실험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미국 WMI사에서 기상항공기 2대를 추가로 임차해 회당 인공강우 실험 규모를 기존의 8배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향후 5년 내에 평균 증우량 5㎜ 수준에 도달한 뒤,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공강우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당장은 인공강우 기술을 산불 예방에 적용할 계획이다. 가뭄으로 숲이 메마른 지난해 봄에는 강원 지역에 큰 산불이 났지만 많은 눈이 내려 숲속 습도가 높게 유지된 올해 봄에는 산불이 번지지 않은 점을 적용하기로 했다.

인공강우, 안보에도 영향…“장기적 지원 늘려야”

지난 2019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한 주유소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인근 속초까지 번지는 모습. 사진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지난 2019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한 주유소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인근 속초까지 번지는 모습. 사진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인공강우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국가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군사적 목적으로 기술을 쓰면 인접 국가에 호우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지난 20년 간 날씨 조절 분야 선두주자로 떠오른 중국이 인공강우 기술을 군사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은 31개 지역에 인공강우센터를 운영하고, 항공기뿐 아니라 로켓과 대포도 활용해 구름 씨앗을 뿌리는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 800억원 수준의 예산과 5만명의 인력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은 2022년 6월부터 11월 사이 가뭄을 겪은 양쯔강 유역에 241회의 항공편과 1만5000회의 로켓을 발사해 85억6000만톤 규모의 강수량을 추가로 발생시켰다.

기상학자들은 우리나라가 날씨 조절 기술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장은철 공주대학교 대기과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보유한 기상항공기는 소형 관측용 장비인데다 한 대밖에 되지 않아 실험의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개발해야 할 기술이라면 항공기 크기와 숫자 모두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다목적 기상항공기 ‘나라호’는 양 날개에 구름 씨앗 약 200g을 실은 연소탄 24발을 장착한 채 한 시간 가량 실험을 수행할 수 있다. 항공기 내부는 관측 장비로 가득 차, 구름 씨앗을 더 실을 여력도 없는 상태다. 한국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3분의1 수준인 태국조차도 인공강우 실험 항공기를 24대 보유하고 있다.

이현호 공주대 구름물리센터 교수는 “인공강우를 비롯해 폭우를 막거나 우박을 줄이는 기술은 이론적으로 구축돼 있지만, 실전에서 효과를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긴 안목으로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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