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이화영 옥중서신 ‘속편’은 언제 나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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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법원과 검찰을 흔들어 사법 시스템을 공격한다고 있는 죄가 없어지지 않고 죄가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중대 부패 범죄자가 허위 주장으로 사법 시스템을 붕괴하려는 시도입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달 23일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의 ‘검찰 술자리 회유’ 주장에 대해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검찰총장이 특정 사건에 이렇게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2003년 송광수 총장이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려는 노무현 청와대를 향해 “내 목을 쳐라”고 맞섰고, 2005년 김종빈 총장이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반발해 사표를 낸 것 외엔 가장 강도가 높다.

총선 직전 “검찰이 술자리로 회유”
장소·일시 오락가락, 음주도 번복
검찰총장 일갈 뒤 민주당은 침묵

이화영은 지난달 4일 법정에서 “술도 한 번 먹었던 기억이 있다. 소주였고 얼굴이 벌게져 한참 진정되고 난 다음 귀소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변호인은 “종이컵에 입만 대고 내려놓은 것”이라고 음주 사실을 부인했다. 음주 일시도 지난해 6월 30일로 주장했다가 ‘6월 28일, 7월 3일, 7월 5일 중 7월 3일이 유력’으로 바뀌었고, 음주 장소는 ‘1313호 검사실 앞 창고’에서 ‘검사실 내 영상녹화실’로 바뀌었다. 이화영은 1년 반 넘게 재판받는 동안 ‘술판’ 주장을 꺼낸 적이 없다. 그런데 지난달 4일 결심 공판을 나흘 앞둔 마지막 재판에서 느닷없이 이런 주장을 한 것이다. 4·10 총선을 6일 앞둔 시점인 점도 묘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장의 신빙성부터 따져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총선 엿새 뒤인 지난달 16일 “100% 사실로 보인다”며 ‘국기 문란 사건’으로 규정했다. 민주당은 특별대책단까지 구성하고 수원지검을 항의 방문하며 검찰에 포화를 퍼부었다. 그 의도는 능히 짐작됐다. 오는 6월 7일로 예정된 1심 최종 공판에서 이화영이 유죄 선고를 받으면 이 대표의 기소 가능성도 크게 높아진다. 도 차원에서 부지사가 북한과 큰돈이 오가는 위험한 협상에 나섰다면 지사에게 보고하고 지시받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총선 압승으로 자신감이 붙은 가운데 이화영 유죄 선고를 막기 위해 ‘술자리 회유’ 주장을 띄워봄 직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총장의 발언 다음날부터  민주당에서 ‘이화영’이란 말이 쏙 들어갔다.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재명 대표는 ‘채 상병 특검’ 얘기만 했다. 최고위원들도 ‘채 상병’만 입에 올렸다. 그 이후에도 민주당에선 ‘이화영’ 얘기를 듣기 어렵다. 오히려 조국혁신당에서 이 문제를 입에 올리고 있다. 검찰 출신 법조인의 분석이다.

“민주당은 이원석 총장의 작심 발언에 ‘이건 아닌데’라며 당황했을 거다. 검찰은 이화영 조사에 입회한 변호사와 교도관 38명 전원 등의 진술을 일일이 받고, 출두 기록과 교도관 근무일지 등도 제시하면서 이화영 주장을 족족 반박했다. 반면 이화영 측은 장소·일시 등에서 계속 말이 바뀌더니 음주 여부까지 뒤집었다. ‘회유’ 주장이 공갈로 끝나는 형국이다. 민주당도 더 문제 삼았다가는 ‘이재명과 이화영은 한 몸’이란 인식만 굳어질 것을 우려해 공세를 접었을 거다.”

이화영은 골수 운동권 출신으로 이해찬 전 대표 최측근이고 민주당 국회의원을 한 사람이다. 이런 그에게 술과 연어 접대한다고 회유가 될까? 또 이 전 부지사는 문제의 술자리 일시를 6월 30일이나 7월 3일이라고 했는데, 그는 이미 지난해 6월 9일 “이 지사에게 ‘북한이 방북 비용을 요구하는데 김성태가 처리할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변호인 입회하에 검찰에 진술했다. 이렇게 ‘월척’(이 지사의 연루 정황 진술)을 낚은 검찰이 뭐하러 20일 뒤 진술 조작 회유를 한단 말인가. 요즘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세 번 연속 발부되는 피고인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이화영은 법원이 구속영장을 세 번 발부해줬다.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음을 법원이 인정했기에 ‘3관왕’에 오른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요즘 법조계에선 “이화영의 옥중 서신 ‘속편’은 어디 갔나?”란 말이 떠돈다. 이화영은 지난달 22일 A4 2장 분량의 ‘옥중 서신’을 공개하며 “검찰이 ‘전관 변호사’를 동원해 날 회유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변호사로 지목된 인사가 “사실이 아님을 명확히 밝힌다”는 입장문을 내면서 의혹은 확대되지 못했다. 당시 이화영은 ‘옥중 서신’ 옆에 ‘1’이라고 적어 추가 폭로 가능성을 흘렸다. 그러나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옥중 서신 2’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계속하면 법원의 선고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 않았을까.” 검찰 출신 법조인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