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복룡의 신 영웅전

벨의 전화기 발명과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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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대학교수 재직 시절에 나는 학생이 결석한 사정은 들어줬지만, 지각은 용서하지 않았다. 지각은 결석보다 더 잘못된 처신이라는 것이 평소 나의 소신이다. 길고 긴 인생에서 한두 시간이야말로 참으로 순간이요, 찰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몇 시간의 차이로 운명이 하늘과 땅 차이로 바뀌는 사례가 허다하다.

1876년 2월 14일 미국 연방특허국에는 30대 청년이 이상한 기계를 들고 들어와 특허를 출원했다. 담당 직원이 기계의 성능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멀리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담당 직원이 일단 서류와 기계를 접수하고 그 청년의 신원을 물었더니 이름은 알렉산더 벨(1847~1922·사진)이라고 했다.

신영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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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묘하게도 같은 날 연방특허국의 또 다른 직원이 전화 특허 출원을 받았다. 담당 직원은 서류와 기계를 접수하고 40대 신사의 신원을 물었더니 엘리샤 그레이(1835~1901)라고 했다. 열두살 연상인 그레이는 벨보다 훨씬 전에 이 분야에서 선구적 지식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레이는 전화를 출원하고 돌아와 전화의 대량생산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그레이는 전화 출원이 기각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특허국을 찾아가 진상을 알아봤더니 그와 벨이 같은 날짜에 전화를 출원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레이는 전화 특허권을 자신과 벨에게 공동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곧이어 법원에 제소했다. 이에 연방최고재판소 판사가 특허 출원 접수 과정을 알아봤더니 그레이보다 벨의 출원이 2시간 빨라 결국 그레이가 패소했다.

2시간 차 때문에 벨은 세계적인 발명가의 명예를 얻어 억만장자가 됐다. 그러나 그레이는 바로 그 2시간 차 때문에 애쓴 보람도 없이 재산만 탕진했다. 인생에서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패는 실기(失期)다. 지금 우리 정부도 그렇지 않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