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출산율 1 미만' 한국 말고 더 있다…동아시아 '인구 절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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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출산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진 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홍콩 0.77명(2021년 기준), 대만 0.87명(2022년), 싱가포르 0.97명(2023년) 등 동아시아 주요국의 합계 출산율도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 0.72명을 기록한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인구 절벽'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지난해 기준 인구가 592만 명에 불과한 싱가포르는 인적자원 외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도시국가다. 낮은 출산율이 국가 운영에 타격을 준다. 싱가포르 저출생의 원인은 한국과 판박이다. 월세·교육비 급등에 따른 인한 육아 비용 상승, 일·가정 양립 문화의 부재, 코로나19로 결혼을 미룬 커플의 증가, 독신 비율 증가 등이다.

이에 싱가포르 정부는 ‘베이비 보너스’ 제도를 통해 저출생에 대응하고 있다. 두 자녀까지 1만4000 싱가포르달러(약 1416만원), 세 자녀 이후부터 아이를 출산할 때마다 1만6000 싱가포르달러(약 1619만원)를 지급한다. 이 외에도 미혼 남녀의 매칭을 돕는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거나 공공주택 입주 우선권 제공, 4주간의 출산 휴가(산모는 최대 16주) 등의 출산장려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는 평가다. 싱가포르 통계청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합계 출산율은 2022년 1.04에서 지난해 0.97명으로 내려앉으며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그나마 적극적인 이민정책 덕에 싱가포르 인구는 30년 전과 비교해 85% 늘어났다.

사실상 도시국가인 홍콩의 상황도 비슷하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홍콩의 합계 출산율은 1.06(2019년), 0.88(2020년), 0.77(2021년) 등으로 계속 우하향이다. 비싼 집값과 생활비, 보육기관 부족 등이 저출생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홍콩 정부는 지난해 신생아 1인당 2만 홍콩달러(약 351만원)를 지급하는 정책을 내놨지만, 한 달 치 집세도 내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만은 지난 2018년부터 유아를 키우는 가구에 매달 최대 1만3000 대만 달러(약 55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도 2017년 1.13명이던 합계 출산율은 2021년 0.98명까지 떨어졌다. 역시 주택난과 교육비 상승에 따라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부터 대만 일부 도시에선 ‘난자 냉동’ 보조금도 지급하고 있다. 대상과 액수는 시별로 다르지만 신죽시(新竹市)에서는 검사, 난자 동결, 동결 난자 관리비 등 각각에 보조금이 지급돼 최대 3만1000 대만달러(약 131만원)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더해 대만 정부는 그동안 금지해온 동성 커플과 미혼 여성의 체외수정(IVF)이나 난자 동결 등의 시술을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전면 금지했던 대리 출산 기준 완화도 검토하고 있다.

각종 자구책에도 출산율 반등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이들 국가의 공통분모다. 일각에서는 일시적인 현금 지원책보다는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폐쇄적인 유교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에 관한 도덕적 엄숙주의 ▶성 역할 구분으로 한쪽 성에 집중되는 육아 부담 ▶사회적 성취를 중시하는 입신양명 문화 등이 저출생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앨리스 옌신 대만 국립연구소 박사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 "혼외 출산을 금기시하는 유교 문화권의 가족제도가 특히 출산율을 끌어내리고 있다"면서 "혼외자 출산 등에 대한 터부를 깨고 이에 대한 지원을 끌어올리는 것이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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