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한 흉기에 한쪽 눈 실명…살만 루슈디, 그 혐오 이겨낸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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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살만 루슈디. 영국에선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도 받았고 부커상도 수상했으나 이슬람 문화권에선 신성모독자다. AFP=연합뉴스

살만 루슈디. 영국에선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도 받았고 부커상도 수상했으나 이슬람 문화권에선 신성모독자다. AFP=연합뉴스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의 삶은 2022년 8월 12일 전과 후로 나뉜다. 도발적 작품으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돼온 그는 이날 미국 뉴욕에서 강의 중이었다. 강연 중 객석에서 괴한이 갑자기 무대 위로 난입해 그를 칼로 10여 차례 찔렀다. 이 공격은 27초 동안 이어졌다. 강연 스태프들이 달려들었으나 범인은 막무가내로 칼을 휘둘렀다.

치명상을 입은 그는 목숨은 부지했으나 오른쪽 눈은 실명, 왼손은 자유롭게 쓰기 어렵게 됐다. 복부 자상 때문에 간 역시 제 기능을 다 못한다. 은퇴설이 돌았던 그가 이달, 신간을 냈다. 제목은 『칼(Knife)』. 자신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내용이다.

살만 루슈디의 2017년 사진. AP=연합뉴스

살만 루슈디의 2017년 사진.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와 BBC 등 외신은 지난 13일(현지시간)부터 앞다퉈 이 책을 다루고 있다. 인터뷰 또는 책 리뷰 기사에 등장하는 사진에서 루슈디는 한쪽만 검은색 렌즈를 끼운 안경을 끼고 살짝 미소를 짓고 있다. 친절하지만은 않은 미소이지만, 루슈디 특유의 날카로운 명석함이 선명하다. NYT는 "루슈디는 죽음과 스쳤던 기억을 직시하며, 그 이후의 고통스럽고도 오래 이어지는 회복의 과정을 서술한다"고 적었다. 루슈디는 책에서 칼에 찔린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며, 의사가 자신에게 했다는 말도 소개한다. "피의자가 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몰랐던 걸 감사히 여기라"는 말이다.

죽음의 위협은 그의 삶의 일부였다. 그가 1988년 출간한 소설, 『악마의 시』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신성 모독으로 논란이 됐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당시 "루슈디를 죽이라"는 요지의 종교 칙령을 내렸다. 그는 살해 위협 때문에 영국으로 망명했고, 이란은 영국과 외교를 단절했다. 루슈디는 앞서 81년 냈던 두 번째 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영국의 권위 있는 세계적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았다.

살만 루슈디의 신간 표지. AP=연합뉴스

살만 루슈디의 신간 표지. AP=연합뉴스

신간에서 루슈디는 자신의 트라우마뿐 아니라, 범인과도 정면으로 마주한다. 작품에 범인을 등장시켜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통해서다. 범인 하디 마타르는 범행 후 뉴욕포스트에 "루슈디의 강연을 많이 봤는데, 솔직하지 못하다"며 "나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싫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루슈디는 "많은 사람은 솔직한 척하지만 가면을 쓰고 거짓말을 한다"며 "그렇다고 그들을 다 죽일 이유가 성립하는가"라고 되묻는다. 루슈디는 범인과의 이 가상 대화에서 책망 또는 비난이 아닌, 질문을 한다. 영국 가디언지가 "(범인이 루슈디에 대해 가졌던) 혐오가 사랑으로 극복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표현한 까닭이다.

NYT에 따르면 신간에는 실제 사랑 이야기도 있다. 그의 부인인 미국 시인이자 소설가, 레이철 엘리자 그리피스를 만난 과정을 그린 내용이다. 루슈디는 30세 이상 연하인 그리피스를 만나 한눈에 반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에 골인하는 과정을 그렸다. NYT는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이야기를 지나면 아름다운 빛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말했다.

루슈디는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지만 NYT를 포함한 다수 매체에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한다면, 미국을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텔레그래프에 "트럼프의 고삐가 다시 풀린다면 참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며 "미국은 살기 어려운(unlivable) 나라가 될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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