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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업 수사한 '벨트검사'가 분식회계 변호…"일정기간 막아야" [벨트검사의 두 얼굴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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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검찰청은 매년 각 분야 전문성을 쌓은 검사들을 심사해 공인전문검사 1급 및 2급 인증서를 준다. 실제 벨트를 수여하는 건 아니지만 검찰에선 1급은 블랙 벨트, 2급 블루 벨트라고 부른다. 2013년 제도 도입 이래 289명의 검사가 벨트를 취득했고, 이 중 78명은 퇴직 후 변호사가 됐다. 일러스트는 인공지능 달리(DALL·E)에게 블랙·블루벨트 검사들이 대검찰청 앞에 도열한 모습을 의뢰해 만든 가상 모습. 편집=김정민 기자

대검찰청은 매년 각 분야 전문성을 쌓은 검사들을 심사해 공인전문검사 1급 및 2급 인증서를 준다. 실제 벨트를 수여하는 건 아니지만 검찰에선 1급은 블랙 벨트, 2급 블루 벨트라고 부른다. 2013년 제도 도입 이래 289명의 검사가 벨트를 취득했고, 이 중 78명은 퇴직 후 변호사가 됐다. 일러스트는 인공지능 달리(DALL·E)에게 블랙·블루벨트 검사들이 대검찰청 앞에 도열한 모습을 의뢰해 만든 가상 모습. 편집=김정민 기자

헌법은 흉악범에게도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제12조 제4항). 변호사 윤리규약에서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지 않는다”(제16조 제1항)고 명시한 이유다. 법적 조력이 필요한 누구라도 차등 없이 돕는 게 변호사에겐 직업윤리다.

검찰이 범죄 척결을 위해 공들여 키운 ‘공인전문검사(벨트 검사)’가 퇴직 후 ‘전문 변호사’로 거듭나 범죄자를 돕는 경우라면 어떨까. 공직에서 특정 분야의 사건을 집중적으로 수사하며 쌓은 전문성이 해당 분야에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피고인을 위해 활용되는 역설은 벨트 검사 출신 변호사의 사건 수임 등 윤리를 둘러싼 여러 논쟁을 촉발한다.

벨트 딴 변호사, 범죄 혐의자 ‘방패’로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라덕연 투자자문업체 대표가 지난해 5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라덕연 투자자문업체 대표가 지난해 5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10여 년 전 여러 대기업 총수들의 비자금 수사를 맡아 2014년 기업자금비리 분야 블루벨트를 취득한 ‘기업통 검사’가 있다. 2016년 퇴직해 변호사가 된 그는 현재 ‘1000억 원대 분식회계 의혹’을 받는 한재준 전 대우산업개발 대표를 변호한다. 피해자가 최대 7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폭락 사태’의 주범 라덕연 전 호안투자자문 대표도 이 기업통 검사의 의뢰인이다.

검찰에 몸담은 18년 중 대부분을 특별수사·금융수사에 할애한 그는 퇴직 후 베테랑 판·검사 출신들이 이끄는 강소 로펌에 대표 변호사로 합류했다. 굵직한 경제사범들의 변호인이 된 그는 중앙일보에 “전관이 (수임료를) 많이 받는 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현직일 때 쌓은 전문성을 전문 사건에 활용하는 것을 비난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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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환경 분야에서 블루벨트를 받은 또 다른 검사는 퇴직 후 가짜 석유를 판매한 일당을 변호했다. 이 일당은 저렴한 선박용 경유를 자동차용 경유에 섞는 방식으로 약 366만 리터(50억원 상당)의 가짜 석유를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이 판매한 가짜 석유는 차량 엔진 고장을 유발하고, 환경오염물질까지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리책을 맡았던 피고인은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검사 시절 여러 환경 파괴사건을 수사한 그였지만, 변호사로서는 충남 부여에서 20년간 불법 폐기물 매립 의혹을 받아온 업체의 행정소송을 대리하기도 했다.

검찰 내 유일한 교통 분야 블루벨트 보유자였던 34년 차 베테랑 검사는 변호사가 된 뒤 그 이력을 살려 여러 교통사고 사건을 맡았다. 그중에는 경찰관을 폭행한 음주 운전자 사건도 있었다. 면허취소 수준의 만취 상태에서 4㎞가량을 달린 운전자는 음주측정을 요구한 지구대 경찰관들에 “XX 이건 아니잖아요” 등의 욕설을 뱉고 밀치는 등 공무집행을 방해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전문성 살려야”…“스스로 자제해야”

벨트 검사 출신 변호사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범죄자를 변호하는 행태에 대해선 법조계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변호사가 된 이후 검사 시절 전문성을 살리는 건 당연한 이치”라는 주장과 “공직에서 쌓은 전문성인 만큼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변호사가 전문성을 활용하는 것이 비판받을 일인가. 검사 시절 쌓은 지식도 변호사 개인의 것”이라며 “공직자에 대한 기대감과 변호사에 대한 실망감은 달리 평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벨트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아플 때 명의를 찾는 것처럼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한테 사건을 맡기는 건 의뢰인에게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수도권의 한 차장검사는 “벨트를 따고 나가서 범죄자를 변호하는 건 최소한의 공직 윤리를 무시한 표변(豹變)”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간부급 검사는 이들을 두고 “전문성을 가진 신흥 전관이나 다름없다”고 짚었다. 블루벨트를 받은 한 변호사는 “벨트 출신에게 사건을 의뢰할 때는 일반적인 변론 외의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임료에는 일선 검사들에게 영향력을 끼쳐달라는 기대감도 들어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법조인들의 고민은 깊어진다. 벨트 검사 출신인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변호사가 된 이상 도덕적 기준을 내세워 사건을 가려서도 안 될 일이다. 다만 검사로서 쌓은 전문성으로 어느 정도의 악질 범죄까지 변호할지는 늘 고민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블루벨트를 취득한 현직 검사는 “벨트 지원자 상당수는 ‘평생 검사를 할 수 없고, 언젠가 옷을 벗고 나가려면 무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고민을 안고 지원서를 낸다”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검사 시절 전문 분야, 수임 제한해야”

벨트 검사의 사건 수임에 대해 일률적인 선을 그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몇 가지 원칙과 기준을 제시한다. 먼저, 검사 시절 관여한 사건의 수임 금지 원칙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본인이 수사·기소·재판에 참여한 피의자나 피고인의 변호인이 되는 건 윤리에 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변호사는 무조건 의뢰인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책임이 있다. 검사로서 동일인에 한번은 칼을 들었다가 변호사로서 방패를 들어야 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퇴직 후 일정 기간이라도 전문 영역의 사건 수임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검찰의 수사기법을 훤히 꿰뚫고 있는 전문 변호사는 수사와 재판을 교묘하게 방해할 여지가 있다. 특히 기업·금융·부정부패와 같이 고도로 전문화한 범죄 영역의 사건은 더 우려스럽다”며 “일정 기간 수임을 제한하며 검찰에서 또 다른 전문검사를 키워낼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법 제31조 제3항은 검사나 판사로 재직하다 퇴임한 공직자의 경우 직전 1년간 근무했던 법원·검찰청의 사건을 퇴직 후 1년간 수임할 수 없게 규정해뒀다. 이를 어길 경우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제명이나 정직, 과태료 등의 징계를 받게 된다. 다만 공인전문검사의 퇴직 후 사건 수임에 관한 규정은 전무한 상황이다. 총선 전 녹색정의당은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공직에서 퇴임한 변호사의 2년 치 사건수임 내역을 공개하는 사법개혁 공약을 발표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벨트검사의 두 얼굴

일러스트=그림 인공지능 달리(DALL·E), 편집=김정민 기자

일러스트=그림 인공지능 달리(DALL·E), 편집=김정민 기자

①[단독] 마약 잡던 검사, 학생에 마약 판 놈 변호…벨트검사의 배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2825

②[단독] 세금 쏟은 '벨트검사'…퇴직자 40%는 10대 로펌 갔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2813

③[단독] 기업 수사한 '벨트검사'가 분식회계 변호…"일정기간 막아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3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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