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령도든 어디든 원할 때 진료"vs"심장내과 의사 더 귀해질 것" [정부·의료계 2000명 증원 효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두 달 넘게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의대 증원의 미래에 대한 양측의 전망은 정반대다. 전국 어디에서나 걱정 없는 의료 시스템이 구축될 것인가, 필수·지역의료가 붕괴하고 의료비가 폭증하는 사회로 갈 것인가. 정부 안대로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가정할 때, 양측이 예상하는 시나리오를 정리해 봤다.

정부가 예상하는 2035년 

#. 서해 최북단 섬인 인천 옹진군 백령도. 2035년 이곳 주민들은 “원할 때마다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인천시의료원 소속 백령병원에 7개 과목 전문의가 모두 채용되면서다. 10년 전인 2025년만 해도 백령병원 전문의는 3명에 불과했다.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려면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야 했다. 출산이 임박해 ‘소방헬기’를 타고 도시로 가는 임신부도 있었다.

의대를 2000명 증원해 의사 숫자가 늘고 필수·지역의료 대책이 뒷받침된다면, 정부는 이런 미래가 가능하다고 본다. 보건복지부는 “2035년엔 전국 어디서나 국민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복지부가 배포한 홍보 포스터는 임신부를 진료하기 위해 배를 타고 섬마을 왕진을 도는 젊은 산부인과 전문의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정부가 예상하는 의대 증원과 의료 개혁의 미래의 모습은 이렇다. 우선 늘어난 의사는 지역의료에 다수 종사한다. 2025년 늘어나는 정원 2000명 가운데 82%인 1639명이 비수도권에 배정됐다. 향후 5년 동안 8000명이 넘는 지역 의대 졸업자 중 상당수가 졸업 후에도 지역에 남는다. 지역인재 전형 비율을 40%에서 60% 이상으로 올리고, 지역 필수의료기관에 장기근속하는 의사를 길러내는 ‘계약형 필수의사제’가 도입되면서, 지역의료 종사자가 늘어나리라는 것이 정부의 전망이다.

지역 국립대병원은 서울 ‘빅5’ 병원에 준하는 대형 병원으로 성장한다. 2027년까지 국립대 의대 교수는 1000명 더 늘어나고, 권역별로 최대 500억원이 지원된다. 지역 국립대병원이 성장함에 따라 암수술을 하기 위해 지방에서 멀리 수도권까지 상경치료를 받으러 올 필요가 없어진다. 의료전달체계도 병원 규모별로 역할이 확실히 구분된다. 대형병원(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 진료에 주력한다.

필수의료 유입도 늘어난다. 필수의료에는 2028년까지 건강보험 재정 10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도 자리를 잡아 의료진의 형사소송 부담을 던다. 필수의료를 기피했던 주요 원인인 낮은 보상과 법적 책임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필수의료 지원자도 자연스레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수련병원의 개념도 확 바뀐다. 현재 수도권 대형병원에 집중적으로 배치되는 전공의들이 권역별로 다양한 병원에서 수련을 받도록 환경이 바뀐다. 대형병원은 전문의 중심으로 중증환자 진료에 전념한다.

의료계가 예상하는 2035년 

#. 2035년 한 지방 소도시에 사는 70대 A씨는 몇 해 전 급성 심근경색으로 죽다 살아났다. 재발 위험이 있다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에는 심장내과 전문의가 한 명뿐이다. 의대 증원을 해서 의사가 많아졌다는데, 그 많은 의사는 다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A씨의 아들은 “건강보험료가 과거보다 크게 올랐다”고 푸념한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이 2000명으로 확대되면 한국 의료의 미래가 암담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의 필수·지역의료 공백은 해결하지 못한 채, 오히려 의료비 증가와 의료 영리화로 이어질 것이라 걱정한다.

의료계가 보는 암울한 미래는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우선 가장 빨리 닥칠 문제는 의대생 집단 유급 및 전공의 공백 장기화다. 상당수 전공의가 전문의 길을 포기하고 일반의로 개원가에 취직하거나 군 복무를 택한다. “앞으로 4~5년간 전문의 수급은 망했다”(김대중 대학내과학회 수련이사)는 것이 현재의 전망이다.

의학 교육의 질 저하도 문제가 된다. 2000명 증원은 현 정원(3058명)의 60%를 한 번에 늘리는 작업이다. 해부학 실습처럼 소수로 이뤄져야 하는 수업은 “지금도 카데바(실습에 사용되는 시신) 확보에 난항을 겪어 구색 맞추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의대생협회)는데, 더 악화할 것이라고 의료계는 우려한다.

의대 증원으로 향후 추가로 배출된 의사들은 필수의료로 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필수과 진료에 대해 수가 가산율 확대 등의 대책을 제시했지만, 애초에 워낙 저수가로 책정된 탓이다. 진료·수술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근본 구조가 그대로인 한, 비급여 진료로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비필수과로의 쏠림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역의료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는 늘어난 의사를 수용할 만큼 큰 병원이 없는데 단기간에 확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대형병원 9곳이 수도권에 총 6600병상 규모의 분원을 설립 중이라 추가 배출된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이 불가피하다.

국민은 의료비 부담이 늘어난다. 의사 수가 늘면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까지 과잉 공급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은 “인구 1000명당 의사 1명이 늘어나면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약 22% 증가한다”는 2007년 건보공단 연구보고서를 근거로 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