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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위기에, 원화값 17개월만에 최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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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며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달러당 원화값이 표시돼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 거래일보다 8.6원 내린(환율은 상승) 1384원으로 마감했다. [연합뉴스]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며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달러당 원화값이 표시돼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 거래일보다 8.6원 내린(환율은 상승) 1384원으로 마감했다. [연합뉴스]

이란의 대(對)이스라엘 공습이 불러온 ‘중동 불안’에 국내 금융시장이 들썩였다. 원화값은 17개월 만에 달러당 1380원 선을 뚫었고, 코스피는 0.42% 하락했다. 미국·중동 변수에 따른 강(强)달러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라 ‘1달러=1400원’에 도달할 가능성도 커졌다. 외환정책 당국은 필요할 경우 안정화 조치에 나서겠다며 시장 개입을 시사했다.

1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장 대비 8.6원 내린(환율은 상승) 1384원으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2022년 11월 8일(1384.9원) 이후 최저점이다. 지난달 11일 달러당 1310.3원까지 올랐던 원화값은 이달 들어서만 35원 가까이 내리는 등 빠르게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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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팔라진 원화 약세엔 불붙은 중동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이달 들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스라엘이 지난 1일(현지시간)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고, 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란은 13일 밤 이스라엘 본토에 사상 첫 공격을 진행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재차 보복할 거란 외신 보도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국채 금리와 주가가 하락하고, 국제유가와 달러화는 강세를 보이는 식이다. 이날 금융시장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약세를 나타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0.42%(11.39포인트) 내린 2670.43에 거래를 마쳤다. 일본 닛케이지수(-0.74%), 대만 자취안지수(-1.38%) 등도 하락세를 보였다.

‘원화값 1400원대’ IMF·리먼·미국 긴축 때 왔다

특히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 선호 경향이 뚜렷하다. 고유가, 물가 상승 우려 등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질 거란 전망도 강달러를 부추긴다. 주요 6개국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1973년=100)는 12일 기준 106선에 올라섰다(106.04).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원화값이 달러당 1400원까지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화값이 1400원 아래로 내려간 건 지금껏 세 번밖에 없던 일이다. ▶1997년 12월~1998년 6월 ▶2008년 11월~2009년 3월 ▶2022년 9~11월 등이다. 역대 세 번의 ‘역대급 원저(低)’ 기간 중 어느 때를 닮았느냐에 따라 향후 환율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1차 원저 때인 1997년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에 따른 외환위기가 오면서 원화 가격은 곤두박질쳤다. 단기외채 비율 역시 1997년엔 657.9%로 높았다. 국가신용등급은 대폭 하락했고, 국채 금리는 올랐다. 달러는 가만히 있는데 원화 가치가 떨어졌다. 국내 물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 파고가 몰아쳤다.

2008년 찾아온 2차 원화 급락의 방아쇠를 당긴 건 미국이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한국엔 유동성 위기가 왔다. 국제 금융시장의 외화 차입이 막히면서 정부가 은행 대외채무 지급 보증에 나서고, 외환시장에 100억 달러 이상을 공급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했다.

원화가 세 번째 1400원대를 기록한 건 2022년 9월로 비교적 최근이다. 미국이 금리를 단번에 크게 올리는 가파른 긴축에 나서면서 달러 가치가 오른 영향이다.

이번 원화값 하락 역시 2022년과 유사하다는 게 정부 분석이다. 국내 문제라기보단 미국 금리 인하 전환에 대한 기대가 뒤로 밀렸다는 게 달러 강세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는 상황이 아닌 데다 외환보유액도 충분하다.

하지만 급격한 원화값 하락은 수입 물가 상승, 외국인 투자자 유출 등 국내 경제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외환 당국이 움직인 이유다. 이날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각별한 경계심을 갖고 향후 진행 양상 등을 면밀히 점검하겠다. 외환·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우려가 있는 경우 시장 안정화 조치를 적기에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사태 전개 양상에 따라서는 에너지·공급망 중심으로 리스크가 확대되고 금융시장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며 “정부는 각별한 긴장감을 갖고 범정부 비상 대응 체계를 갖춰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중동 사태가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으면 원화 가치가 다시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 증시가 이란의 공격 후에도 크게 출렁이지 않는 등 시장에선 향후 정세를 관망하는 경향이 강하다. 확전만 되지 않으면 원화값이 1350원대까지 올라설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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