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4일 만남 이후 의료계의 후폭풍이 거세다. 박 위원장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원로 교수까지 나서 정부를 '일진'과 '조폭'에 비유하며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불신임 성명서로 대응하자” 전공의 반발
7일 의사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게이트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조회수가 많은 인기 글 5개 가운데 3개는 박 위원장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을) 만나지 말고 만날 것 같은 시늉만 해야 했다” “기습 합의가 두렵다”는 것이다. 한 글쓴이는 “(박 위원장에 대한) 탄핵 혹은 병원 단위로 불신임 성명서를 내고 박 위원장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말자는 의견이 공유되고 있다”고 적었다.
실제로 ‘서울아산병원 사직 전공의’라고 밝힌 이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 다음날 성명을 통해 “일련의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밝히지 않으면 비대위원장 불신임 투표를 진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빅5’ 병원을 사직한 전공의 A씨는 “만남에 대한 반발이 너무 커 박 위원장을 정부 프락치라고 주장하는 세력도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공의들은 2020년 최대집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독단적으로 정부와 합의한 전례가 있다면서 박 위원장을 비판한다. 실제로 현재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돌고 있는 박 위원장 탄핵 요구 성명서에는 “2020년 최대집 전 회장의 졸속 합의에 따른 트라우마 때문에 1만여 명 사직 전공의들이 비대위 독단 행동에 대한 분노·무력감·불안에 휩싸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 위원장을 공개 비판한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씨도 “젊은 의사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밀실 결정”이라며 “젊은 의사들은 기습 합의라는 2020년의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면담 내용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일부 전공의 사이에서는 “오는 9일 2차 만남이 있을 것” “총선 전 합의안이 발표될 것”과 같은 각종 추측도 난무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대전협 대의원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에 “현재 계획된 바 없다”고 공지했다고 한다.
“아들이 일진에게 맞고 왔는데 어미·아비 나서야”
선배 의사들은 정부를 향한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정진행 서울대 의대 비상대책위원회 자문위원(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은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집 아들이 일진에게 엄청 맞고 왔는데 피투성이 만신창이 아들만 협상장에 내보낼 순 없지요”라며 “어미·아비가 나서서 일진 부모(천공? 윤통?) 만나서 담판 지어야죠”라고 적었다.
허대석 서울의대 명예교수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사회에서 20대 아들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조폭에게 심하게 얻어맞고 귀가했는데 사건의 뒷마무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누가 나가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적절할까”라고 했다. 정부를 ‘일진 부모’ ‘조폭’에 비유한 셈이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도 페이스북에 “요즘 이과 국민이 나서서 부흥시킨 나라를 문과 지도자가 말아먹는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환자단체는 세계보건기구(WHO)에 한국의 의료 대란 상황을 살펴봐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환자단체 7곳이 모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세계보건의 날(4월 7일)인 이날 성명을 내고 “환자가 의료 난민으로 전락해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며 “정부와 의료계의 자세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를 다루어 달라고 WHO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