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 신화…여기서 시작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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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호 26면

마포주공아파트

마포주공아파트

마포주공아파트
박철수 지음
마티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시대다. 2020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주택의 약 63%가 아파트다. 반세기 전인 1970년에는 아파트의 비율이 0.77%였다. 대다수(95.3%)가 단독주택이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을 정도로, 한국의 아파트 사랑은 각별하다. 왜 그런 걸까.

한국 주거사학자였던 고(故)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유작인 이 책을 통해 아파트 단지 신화의 시작점으로 마포주공아파트를 지목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포주공아파트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1964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최종 준공된 마포주공아파트는 한국 최초의 아파트 단지로 기록된다. 이 단지는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가 밀어붙인 국가 프로젝트였다. 무려 엘리베이터가 있는 10층짜리 아파트 11개 동을 지어 1000여 세대가 거주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였다. 수세식 화장실에 보일러 등을 갖춘, 그 무렵에 상상하기 어려운 최첨단 주택이기도 했다. 당시 정권은 이 아파트를 통해 군사혁명을 생활혁명으로 전환하고, 경제성장의 성과를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기술력의 한계로 6층짜리 아파트 10동을 지었는데, 이조차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마포주공아파트는 당초 임대아파트였지만, 수년 뒤 대한주택공사(현 LH)의 자금난으로 분양 전환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의 거의 모든 아파트 단지는 분양을 전제로 개발된다. 당시 양질의 주택을 원하는 수요는 많아졌지만 정부의 자금력이 부족했다. 저자는 “정부는 단지 진입로 같은 최소한의 기간시설에만 투자한 뒤 택지를 민간에 매각하면 민간 업체가 단지 안의 모든 것을 입주자들의 분양대금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취했다. 예산이 부족한 1960년대에 채택한 이 방식은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고착되어버렸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오늘날 아파트 단지는 점점 ‘빗장 공동체’로 변하고 있다. 단지 안과 밖의 인프라 격차가 심해진 탓이다. 양질의 임대주택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가 예산이 과거보다 수십 배로 늘어났지만, 주택공급 정책은 여전히 마포주공아파트 체제에서 머물러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 건축사에서 주거사는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모두에게 익숙한 ‘집’인데 정확히 그 기원을 알기 힘들었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의 집을 연구하는데 헌신했다. 그가 남긴 50여권의 저서 중에서도 3년 전 나온 전작 『한국주택 유전자 1·2』는 20세기 한국 주택을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이번 새 책은 전작에서 일부 소개된 내용에 뼈대와 살을 붙여 350쪽에 달하는 단행본으로 완성됐다. 국내외를 넘나드는 저자의 방대한 자료 수집력 덕에 책에는 당시 도면과 사진을 비롯해 각종 자료가 풍성하게 담겼다.

때로는 본문보다 각주 내용이 많을 정도로 저자는 주거사의 공백을 끈질기게 메워갔다. 방대한 자료를 보관하고 정리하는 비결을 묻는 이들이 숱했다. 안타깝게도 박철수 교수는 건강 악화로 지난해 2월 64세로 별세했다. 그의 생전 바람대로 한국 주거사 연구가 촘촘히, 폭넓게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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