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조잔디 두달이면 골병 나요" 고등학교 보건소 줄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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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하고 넘어지고 다쳐요. 건강하던 친구들도 한 두 달만 지나면 축구 하다가 골병이 듭니다.”

서울에 위치한 A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B군(17)의 말이다. B군이 다니는 학교에는 10년 전에 설치된 인조잔디 운동장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잔디 곳곳이 마모되고 패여서 축구화를 신고 제대로 축구를 하기도 어렵다. 맨땅보다도 마찰력이 없다 보니 축구화에 박힌 스파이크가 오히려 미끄럼을 유발해서다. 쉬는 시간 보건실에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 넘어진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올해 인조잔디 교체 예정이던 서울 시내 한 학교 운동장의 모습. 인조잔디가 낡아 부분 교체한 모습이다. 신혜연 기자.

올해 인조잔디 교체 예정이던 서울 시내 한 학교 운동장의 모습. 인조잔디가 낡아 부분 교체한 모습이다. 신혜연 기자.

서울시교육청이 정한 인조잔디 운동장의 내구연한은 10년이다. 2013년 이전에 설치돼 내구연한이 만 10년을 넘긴 학교는 서울에 58곳이나 된다. 이에 서울시는 4년 전부터 인조잔디 개·보수 사업을 위한 예산을 지원해왔다.

 10년 전인 2013년 설치된 인조잔디 운동장. 해당 학교는 올해 초 인조잔디 교체 예산이 배정됐으나 1년째 집행이 미뤄지고 있다. 사진 독자

10년 전인 2013년 설치된 인조잔디 운동장. 해당 학교는 올해 초 인조잔디 교체 예산이 배정됐으나 1년째 집행이 미뤄지고 있다. 사진 독자

그러나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실제로 예산을 지원받아 운동장 개·보수를 진행한 곳은 18곳뿐이다. 지난해 10월 국립환경과학원(과학원)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기술원)이 ‘유해화학물질 중 PHAs(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의 전처리방법’ 시험 기준을 변경했는데, 이에 대해 “결과값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인조잔디 업계 민원이 잇따른 때문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이에 과학원과 기술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새로운 시험 방식과 기존 시험 방식의 결과값이 같다는 점을 입증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1차 시험에서 “기존 방식과 개정된 방식의 결과 간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긴 했지만, 전문위원들의 검토를 받기까지 앞으로도 3단계 승인 절차가 남았다. 서울시에서는 내년 말쯤 이 같은 절차가 모두 종료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문제는 절차가 진행되는 사이에 개·보수가 필요한 인조잔디 운동장 보수는 계속 미뤄진다는 점이다. 올해 인조잔디 교체 사업 대상이었던 학교의 한 학부모는 “인조잔디 예산 배정 소식을 듣고 기뻐했는데 내년에도 설치가 어렵다는 설명을 듣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답답한 마음에 직접 시와 과학원에 전화까지 했지만 ‘전문위원 검토 중이다’ ‘절차가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만 들어 답답하다”고 했다.

서울시 측은 승인 절차가 끝나기 전까진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기존 방식대로 검사하고 인조잔디를 설치해야 하지만, 향후에 검사 방식이 바뀔 가능성이 있어서 기준이 확정되면 따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경환 경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술 표준 관련 문제로 예산 집행이 지연되는 것이라고 해도 서울시가 사전에 학부모, 잔디 업체 등 관련 유관기관의 이견 조율에 나섰다면 지금처럼 불만이 제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오래 된 인조잔디 운동장이 2년가량 방치되는 상황에 대해 서울시 책임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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