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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오-매 단풍 들것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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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호 34면

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다리리
바람이 잦아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영랑 시집』 (시문학사 1935)

제 어머니는 꽃과 나무를 좋아하지만 꽃구경이나 단풍놀이를 가는 법이 없습니다. 이른 봄, 진해나 구례쯤 가자고 해도 싫다고 합니다. 깊은 가을, 설악이나 내장산에 한번 가보자는 제안도 매번 거절합니다. 아니 세상 쓸데없는 일이라 깎아내립니다. 어머니의 꽃구경, 단풍놀이 무용 논리는 이렇습니다. 집 앞 길가에 벚나무 몇 그루 있고, 앞산에 목련 피고, 작은 텃밭에 해당화도 백일홍도 국화도 필 텐데 그리도 가을이면 다시 순리대로 질 텐데 왜 멀리까지 구경을 가느냐는 것입니다. 돈 만 원을 십만 원쯤이라 크게 여기고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는 이제 풍경과 시선까지 절약하는 법을 알게 된 듯합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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