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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비꽃-적(適) 8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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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호 30면

비꽃-적(適) 8
김신용

물방울도 꽃을 피운다
비꽃이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혔을 때,
문득 손등에 떨어졌을 때
거기 맺히는 물의 꽃잎들
무채색 비꽃을 보는 눈은 탄성으로 물든다
비꽃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꽃 한 송이
오늘, 이 꽃을 누구에게 건네줄까?
상상하는 순간의
이 번짐을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걷는사람 2019)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안개비. 이보다 조금 더 굵은 보슬비와 이슬비. 가늘고 잘게 내리는 잔비. 끊기지 않는 줄비. 굵고 선명하게 내리는 작달비 혹은 장대비. 맑은 날 오다가 그치는 여우비. 늦은 밤 살짝 내린 도둑비. 내리는 장대비와 비가 가진 수많은 이름 중에서 저는 비꽃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비가 성글게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순간을 반기며 붙인 이름, 비꽃. 물론 이때 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바로 비설거지. 비설거지는 빗물로 물건을 씻어내는 게 아니라 비에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는 일을 뜻합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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