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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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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기환 경제부 기자

김기환 경제부 기자

축하로 따뜻해야 할 한국전력 나주 본사 분위기가 차갑습니다. 사장 스스로 지난달 20일 취임하자마자 집무실에 ‘워룸(war room·위기 상황실)’ 문패를 달았습니다. 추석 연휴도 반납한 채 워룸 야전 침대에서 숙식을 해결했습니다. “위기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전까지 퇴근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비상합니다.

그만큼 한전은 위기입니다. 당신이 받아든 재무제표가 증거입니다. 한전은 지난해 매출 71조2000억원, 영업손실 32조6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올해 6월 말 기준 부채는 201조4000억원, 누적 적자는 47조원에 달합니다. 한전의 적자는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합니다.

지난달 20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 본사에서 김동철 신임 사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 본사에서 김동철 신임 사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기 해결의 실마리는 전기요금 인상입니다. 그동안 한전은 ‘국민 부담’을 앞세운 정치권 압력에 떠밀려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전기를 팔았습니다. 콩(원가)보다 두부(전기료)가 싼 구조를 바꾸려고 2021년 에너지 가격 변동분을 분기마다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 4분기, 지난해 3분기, 올해 2분기 세 차례를 제외하고는 요금을 동결했습니다. ‘예외적인 상황 발생 시 정부가 요금 조정을 유보할 수 있다’는 부대 조항을 적용한 결과입니다. 사실상 정부가 전기요금을 정해 한전에 통보하는 구조입니다.

물가가 오를까 봐, 낮은 지지율 때문에, 선거가 코앞이라서…. 갖은 이유로 당연한 경영 선택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전기요금을 올릴 수 있겠느냐”는 안팎의 전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회사입니다.

요금을 올려야 하는 고비마다 생색은 정부가 냈고, 부담은 한전(국민)이 졌습니다. 그래서 “전기요금에 모든 것을 거는 회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장 취임사가 목에 걸립니다. 경영 혁신과 내부 개선은 위기 해결의 실마리가 아니라 곁다리이기 때문입니다.

공기업 특성상 민간기업처럼 효율성·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를 외면한 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거나,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한 ‘탈(脫)원전’처럼 한전을 정부 정책의 총대를 메는 ‘2중대’로 활용해선 안 됩니다.

1961년 한전 설립 후 정치인 출신이 사장에 취임하는 건 처음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만큼 더더욱 경제보다 정치를 우선할까 우려됩니다. 역설적으로 당신께 정치를 기대합니다. “어디 감히 전기요금을 올리느냐”고 다그칠 정치권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할 말은 하는 리더십을 보여 주십시오. 훗날 남다른 ‘정치력’으로 한전의 체질을 바꾼 사장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