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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조끼’ 벗은 국민의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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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옥에서 살아왔다. 지팡이를 짚고 법원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처연한 마지막 뒷모습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너무나 당황스러운 결과였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직후 새벽에 내놓은 논평이 고작 “개딸에 굴복한 법원”이라니. “한 줌 흙에 불과한 개딸”이라던 기개는 어디 가고 이렇게 올려치기를 한단 말인가.

사실 대부분의 국민의힘 의원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너무도 당당하게 국회 본회의장에서 30여분간의 이례적인 ‘체포동의안 설명’을 할 때만 해도 ‘숨겨둔 카드가 뭔가는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같은 ‘책사’란 분들도 “이 대표가 검찰 조사를 받고 나서 단식하는 걸 보니 검찰이 상당한 증거를 제시했던 거 아닌가”라며 ‘스모킹 건’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부추겼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문제는 이제 진실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 국민의힘은 도무지 여당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뭘 한 게 없었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주도하면 그저 보조를 맞춰 따라갔고, 검찰과 감사원이 전 정부와 야권 인사에 대한 비위를 추적할 때면 열심히 손뼉을 쳤다. 국회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언론에 주목받는 인물도 여당 지도부가 아닌 한동훈 장관이었다. 오죽하면 ‘한동훈 도어스테핑’이라 불렸겠나.

“오로지 민생”이라고 입으로는 그러는데 대표 상품이 뭔지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설마 시장 가서 먹방을 하고, 검은 비닐봉지를 바리바리 싸 들고 나오면 민생이 살아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연금 개혁을 외치지만, 내년 4·10 총선 전에는 절대 개혁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도 이젠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방탄정당”이라고 비난해왔다. 그동안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친명계의 처신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힘도 그동안 이재명이라는 방탄조끼, 한동훈이라는 방패막이에 얹혀서 지내왔다. 그러니 홍준표 대구시장도 “국민의힘은 이재명에만 매달리는 검찰 수사 정치는 버리라”고 훈수 두는 것 아닌가.

그동안 여권 일각에선 한동훈 장관을 총선에 차출해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구상의 핵심 전제는 ‘이재명 단죄’라는 드라마틱한 서사였지만 현실적으로 총선 전에 그런 시나리오가 완성되긴 글렀다. 외려 각종 특검에 장관 탄핵까지 역공에 시달릴 판이다. 국민의힘은 이제라도 여당답게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제 숨을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