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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 당신도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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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경희 경제부 기자

김경희 경제부 기자

30대 직장인 A씨는 2021년 11월 수원의 한 오피스텔 전세 계약을 맺었다. 전세 보증금은 2억2000만원, 차곡차곡 모은 월급에 대출금을 더해 마련한 종잣돈이다. 신축 오피스텔이다 보니 근저당권이 설정된 데다 정확한 감정가가 나오지 않아 전세보증보험엔 가입할 수 없었다. 당시 전세 수요에 비해 매물은 적었고, 근저당을 낀 전세 계약은 흔한 일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임대인이 부동산업을 하고 있어 자금 융통이 잘 된다고 안심시켰다.

2년 후 A씨는 결국 ‘전세 사기 피해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곧 만기가 돌아오지만 집주인과 몇 달째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A씨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은 전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날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가 허탈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며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수시로 감정이 북받친다”고 토로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난달 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제대로 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난달 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제대로 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경기도 수원 일대에 새로운 전세 사기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전세계약 만기가 지난 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일부가 법적 대응에 나섰고, A씨처럼 만기를 앞둔 예비 피해자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수원남부경찰서에 따르면 50대 임대인 B씨와 그의 아내 C씨의 빌라에 거주하는 임차인 6명은 만기가 지나도록 전세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지난달 이들을 사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B씨 부부는 수원 권선구·영통구 등에 빌라 등 건물 여러 채를 소유한 채 임대사업을 벌여온 것으로 파악된다.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피해자와 예비 피해자 200여 명은 현재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통해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된 해당 임대인에 대한 피해 사례도 100건이 넘는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이제 시작인 데다, 임대인들이 신규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면서 기존 전세 보증금은 반환하지 않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번에도 피해자 상당수는 20~30대다. A씨는 “제가 사는 오피스텔 임차인 대부분은 수원 일대에 직장을 둔 회사원이고, 또 다른 건물에는 20대 취업 준비생도 많이 살고 있다”고 했다. 최근 3년간 악성 임대인에게 전세금을 떼인 임차인 10명 중 8명(8627명 중 77.9%)도 2030세대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피해자들이 자책과 절망을 거듭하다 삶을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최소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거리로 내몰리지 않도록 주거 안정을 지원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신도, 당신의 아들딸도 전세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