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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밤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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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호 30면

밤눈
최인호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 감고 귀 기울이면
까마득히 먼 데서 눈 맞는 소리
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

당신은 못 듣는가
저 흐느낌 소리
흰 벌판 언덕에 내 우는 소리

잠만 들면 나는 거기엘 가네
눈송이 어지러운 거기엘 가네

눈발을 흩이고 옛 얘길 꺼내
아직 얼지 않았거든 들고 오리라
아니면 다시는 오지도 않지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눈 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

여름의 끝, 빗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가장 멀리 있는 시간을 생각합니다. 아마 겨울밤이겠지요. 그러다 다시 생각을 고칩니다. 여름 끝에서 가장 멀리 있는 시기는 가을, 겨울, 봄 지나 다시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일 것입니다. 『겨울 나그네』 등을 쓴 고 최인호 작가는 고등학교 졸업 전날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어 일종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날을 간절히 바라왔지만 막상 다다르고 보니 유년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불안하고 두려웠다고. 작가는 시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다시 새로운 가을, 우리가 함께 보낸 여름은 이미 가장 먼 과거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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