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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교육 위해 먼 곳 이사했는데…가족 행복은 더 멀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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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에 살던 보험설계사 김미숙(44)씨는 2020년 3월 강동구 상일동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사무실이 있는 명동까지 출근하려면 1시간30분가량 걸리지만, 큰아들의 중학교 진학에 맞춰 더 나은 교육환경을 찾아 이사를 결정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직주근접(職住近接)’을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상일동 이사 후 3년이 지난 김씨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먼 곳으로 이사했는데, 오히려 가족의 행복과 더 멀어진 것 같다”고 한탄했다. “전쟁 같은 장거리 통근에 몸을 맞추다 보면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도 부족해지지만, 몸이 고된 탓에 스트레스가 쌓여 가족관계가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가사분담 문제로 남편과 결혼 후 가장 크게 싸운 것도 상일동으로 이사한 직후였다. 한 달간 남편과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 김씨는 “돌이켜보면 멀어진 출퇴근 거리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는데, 몸이 너무 힘들다 보니 서운한 감정이 풀리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내년쯤엔 원래 살던 전농동으로 다시 이사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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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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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처럼 명동으로 출근하지만, 마포구 공덕동에 사는 박원(38)씨는 상황이 정반대다. 취재진과 동행한 박씨의 출근길은 22분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걸어도 45분이면 충분한 거리라 그날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통근 방법을 선택한다. 가족과의 시간은 줄어든 통근시간만큼 더 확보됐다. 지난 4월에는 2세 늦둥이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아이에게 열이 많이 나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는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다. 박씨는 동료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차로 10분 거리의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를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했다. 박씨는 “직장이 멀었으면 정말 난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긴 통근시간은 가족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가 2014년 한국노동패널조사에 참여한 만 15세 이상 만 74세 이하 인구 약 1만 명을 분석한 결과 통근시간이 60분 미만인 집단에선 가족 활동에 90분 이상 투입한다는 응답자가 39%였지만, 통근시간이 150분 이상일 경우엔 21%로 급감했다. 또 통근시간이 60분 미만일 경우 매일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는 응답자가 절반 이상(52%)인 것과 달리 150분 이상일 경우 33%로 낮아졌다.

장재민 한국도시정책연구소 소장은 “긴 통근길은 가족이 함께 보내게 되는 시간을 줄여 일과 가정이 양립되기 어렵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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