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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아마겟돈 장군' 반역 가담했나…의심 부른 텔레그램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12월 당시 러시아군의 세르게이 수로비킨(왼쪽) 우크라이나 총사령관(현재는 부사령관)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합동참모본부 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당시 러시아군의 세르게이 수로비킨(왼쪽) 우크라이나 총사령관(현재는 부사령관)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합동참모본부 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올 초까지 우크라이나전의 총사령관을 맡았던 세르게이 수로비킨(57) 러시아군 통합 부사령관(육군 대장)이 최근 바그너그룹의 반역 사태에 연루됐을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7일(현지시간)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 정보 당국은 수로비킨이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이 정보의 진위를 평가하고 있다. NYT는 “수로비킨이 프리고진의 반란을 미리 알고 이를 도운 것이라면, 러시아 군부 윗선이 어디까지 가담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수로비킨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서슴지 않는 전술로 ‘아마겟돈(인류 최후의 전쟁이란 의미) 장군’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인물이다. 시리아 내전을 비롯해 여러 전장에서 공을 세운 인물로, 러시아 군부 내에서도 존경받는 군인으로 꼽힌다. 그런 중량감 있는 인물이 반역에 가담했다는 건 러시아 군 수뇌부의 치명적인 균열상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2월 국방부 지휘부와의 확대회의 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오른쪽), 발레리 게라시모프 군 참모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2월 국방부 지휘부와의 확대회의 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오른쪽), 발레리 게라시모프 군 참모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수로비킨은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최전방을 총괄하는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러시아 군부의 강경 노선을 대표하는 그는 전장에서 잔혹한 수법을 구사해온 프리고진의 바그너그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수로비킨은 시리아 내전 때 프리고진과 손잡고 일한 적이 있다.

지난 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수로비킨을 경질,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자 “수로비킨이 프리고진과 지나치게 밀착한 탓”이란 뒷말이 나올 정도였다. 게라시모프에게 총사령관 자리를 내준 수로비킨은 부사령관으로 강등됐다.

이 때문에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수로비킨이 프리고진과 결탁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을 밀어내는 데 동의했을 수 있다고 미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NYT는 이처럼 러시아 군 수뇌부의 분열 가능성이 높은 배경으로 반란 직후 러시아군의 대응이 통상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23일 러시아 국경을 넘은 프리고진은 수 시간 만에 남부 로스토프나도누를 점령했고, 자신만만하게 모스크바 진격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전·현직 미 정부 관계자들은 NYT에 “프리고진이 자신의 우군이 도울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면 반란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프리고진이 반역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벨라루스로 망명한 것도, 모스크바의 우군 때문이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수로비킨은 반란 사태 직후인 23일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을 설득하는 메시지를 냈다. “내부 상황이 악화하는 건 적들이 바라는 것”이라며 “러시아 대통령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익명의 미 전직 당국자는 “수로비킨의 태도를 보면, 한때 자신의 군사적 동맹을 비판하는 그의 몸짓이 매우 불편해 보였다”며 “마치 (본심과 다른) 인질 동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만 내부 수습과 안정에 방점을 둔 푸틴 대통령이 당장 수로비킨을 경질하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알렉산더 바우노프 선임연구원은 “푸틴은 사람을 바꾸는 것을 꺼린다”면서도 “보안기관이 푸틴에게 보고하는 문서에 (이번 반란 사태에) 수로비킨이 연루된 게 있다면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당국자들에 따르면 수로비킨 외에도 프리고진에 동조하듯 행동한 또 다른 러시아 장성들도 있었다. 일례로 국방부 산하 군사정보국 차장인 블라디미르 알렉세예프는 24일 “(반란은) 국가와 대통령을 뒤에서 찌르는 것”이라며 프리고진을 맹렬히 비판하는 동영상을 직접 올렸다. 그러나 알렉세예프는 수시 간 뒤 바그너그룹이 장악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프리고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영상이 찍혔다고 NYT는 전했다. 이와 관련, 마이클 맥폴 전 주러시아 미국대사는 “이상한 일이 너무 많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공모가 있었을 것이라 본다”며 “프리고진이 로스토프나도누를 손쉽게 점령하는 동안 러시아 전역의 무장 병력은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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