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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복수vs부친 이름으로…방글라데시 운명 가른 두 여성

중앙일보

입력

방글라데시의 '철의 여인', 셰이크 하시나 총리.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니다. AFP=연합뉴스

방글라데시의 '철의 여인', 셰이크 하시나 총리.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니다. AFP=연합뉴스

아직도 방글라데시가 세계에서 행복한 국가 중 수위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올해 '세계 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서 방글라데시는 137개국 중 118위에 그쳤다(한국 57위). 빈곤과 같은 고질적 문제도 있거니와, 최근엔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경고까지 미국으로부터 받았다. 문제는 지도자, 셰이크 하시나 총리다. 75세 여성으로 방글라데시 건국의 아버지,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의 딸이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2009년 집권 후 연임을 거듭해왔으나, 부정 선거 의혹 역시 끊이지 않았다. 그는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세계 지도자들을 통틀어 최장기 집권 중인 여성이다.

지난 25일(현지시간)엔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직접 "방글라데시에서 미주적 선거 과정을 훼손하는 이들이 있다"며 "그들에게 (미국)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야당인 BNP와 그 지지자들을 폭력 진압하고 언론 자유를 제한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결과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바로 다음날 "선거 과정상 불법 관행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지만 하시나 총리를 바라보는 국제사회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 와중에 지난주,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하시나 총리를 인터뷰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를 "철의 여인(Iron Lady)"라고 부르며 "그의 집권 하 방글라데시는 경제성장률 7% 권을 유지하는 등, 빈곤 퇴치 등에서 일정 정도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호평은 여기까지다. 이코노미스트는 "하시나 총리는 '내 남은 꿈은 조국의 가난을 퇴치하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돌연 '그런데 그 국민이 내 아버지를 죽인 것은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곤 했다"고 적었다. 셰이크 하시나의 아버지는 1975년 쿠데타로 사망했다. 당시 쿠데타 세력은 셰이크 하시나를 제외한 일가족을 몰살했다. 그 쿠데타 세력을 이끈 인물의 이름은 지아우르 라흐만. 쿠데타로 집권한 그 역시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2022년 방글라데시 야당 BNP의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 시위대는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AFP=연합뉴스

2022년 방글라데시 야당 BNP의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 시위대는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AFP=연합뉴스

홀로 살아남다시피한 하시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정계에 진출했고, 국방부 장관 등을 거쳐 집권했다. 그가 통과시킨 법안 중에는 아버지를 비판하는 것을 일절 금지하는 내용도 있다. 그는 이코노미스트에 "그들은 내 어머니와 남자 형제들, 삼촌과 그 부인까지 다 죽였다"며 원통해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셰이크 하시나 총리 측근들은 기자에게 당시의 비극에 대해 주로 물어봐달라고 했지만, 기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총리 본인은 (물어보지도 않은) 그 얘기를 주로 했다"고 꼬집었다.

민주주의 질서 훼손 및 뇌물 수수 등, 셰이크 하시나 총리와 그 측근들을 둘러싼 의혹은 여러 가지다. 그에 대해 묻자 총리는 자신의 의혹은 부인하며 "고위직은 아니고 하부 조직의 일부가 그랬을 수는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요즘은 그렇게 많지도 않고, 내가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횡설수설했다는 얘기다.

셰이크 하시나의 최대 고민거리는 숙적 여성 정치인, 칼레다 지아 전 총리다. 셰이크 하시나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정치를 한다면, 칼레다 지아는 남편의 복수를 위해 정계에 진출했다. 칼레다 지아의 남편이 바로 지아우르 라흐만. 셰이크 하시나의 아버지와 일가족을 쿠데타로 사망에 이르게 한 인물이다. 지아우르 라흐만 역시 독재로 비판받다가 신군부 세력에 의해 처형당하는 비극을 맞았다. 이후 부인 칼레다 지아는 신군부 체제 하에서 정치인으로 두각을 드러냈고, 남편이 이끌던 BNP를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두 여성 정치인의 얽히고설킨 인연이 방글라데시의 운명을 가르고 있는 셈이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숙적은 칼레드 지아 전 총리다. 사진 속 시위대가 들고 있는 포스터의 여성이 칼레드 지아, 오른쪽은 그의 남편인 지아우르 라흐만 전 . AP=연합뉴스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숙적은 칼레드 지아 전 총리다. 사진 속 시위대가 들고 있는 포스터의 여성이 칼레드 지아, 오른쪽은 그의 남편인 지아우르 라흐만 전 . AP=연합뉴스

현재 칼레다 지아가 이끄는 야당, BNP의 기세는 무섭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칼레다 지아를 가택 연금에 처했지만 그 세력에 불을 붙여준 결과만 낳았다. 둘의 결전은 내년 1월 예정된 총선이다. 셰이크 하시나는 이코노미스트에 "나는 물론 자유 민주주의에 따른 투표를 지지한다"면서도 "진짜 제대로된 정당만이 자격이 있는데, BNP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갑자기 방글라데시에 경고를 주는 이유는 뭘까. 셰이크 하시나가 최근 중국의 경제적 지원 및 투자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추정이다. 그는 이코노미스트에 관련 질문을 받고 "내가 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싸움에 끼어들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그게 바로 하시나 총리가 하고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국가 목표 중 하나는 '비전 2041'이다. 말 그대로 2041년까지 집권하며 국가 경제 발전에 역할을 하겠다는 야심이다. 그는 이코노미스트에 "내가 없으면 누가 권력을 잡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셰이크 하시나는 올해 75세, 칼레다 지아는 77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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