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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K직장인에게 월요병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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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K직장인은 이중적이다. 매일 그만두고 싶다면서, 회사를 영원히 다닐 것처럼 대출을 받는다.

야수의 심장을 가진 김모 의원이 하듯 코인 몰빵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살 만큼의 웬만한 집을 구하려면 한계치에 가까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 한다. 자신을 절대 해고가 돼서는 안 되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극한직업. 요즘 K회사에선 선배의 능력보다 거주지가 ‘진짜 실력’으로 여겨진다. 누군가는 말했다. “회사는 일상이지만, 부동산은 인생” 아니냐고.

사람들이 다시 돈을 빌리고 있다. 대부분 집을 사거나, 집에서 살기 위해서다. 국내 5대 은행의 4월 가계대출 신규 취급액은 15조3717억원, 3월은 18조4028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달 대비 각각 69%와 86%가 올랐다. 대부분은 주택 관련 대출이다.

2030세대의 아파트 매입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일대. [연합뉴스]

2030세대의 아파트 매입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일대. [연합뉴스]

집값이 빠질 듯 다시 오르고, 정부가 대출을 풀어주며 금리까지 잡아주니 ‘벼락 거지’ 트라우마를 경험한 2030세대의 영끌이 다시 시작됐다. 이들의 서울 아파트 매수 비중은 3월에만 35.9%다. 엄마 카드를 쓰는 소수의 엄카족을 제외하곤 모두 한계치까지 빌렸을 것이다. 경실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평균 임금 노동자(연 3600만원)가 서울 평균 30평형 아파트(12억8000만원)를 사려면 한 푼도 안 쓰고 36년을 저축해야 했다.

윤석열 정부는 3대 개혁을 말할 때 노동을 맨 앞에 둔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도, 미뤄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모두가 조심스러우나, 노동개혁은 결국 ‘고용 유연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서도 54년 만에 최저 실업률(4월, 3.4%)을 기록한 미국처럼, 쉽게 해고하고도, 쉽게 고용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한국에 지을 것이란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야 청년 세대에게 기회가 열린다고 한다. 문제는 K직장인의 지갑 사정이 유연한 고용을 감당키 어렵다는 것이다. ‘숨은 빚’인 전세보증금까지 더하면 가계부채는 3000조에 육박한다. ‘절대 해고돼서는 안 되는 사회’ 혹은 ‘나는 절대 해고될 리가 없는 사회’가 현실에 가깝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게 아닐 텐데, 정부는 ‘빚내서 집 사라’와 노동개혁을 함께 외치는 역설을 반복하고 있다.

현재 가계대출 수준으론 일부 대기업의 구조조정만으로도 경제가 휘청일 거다. 양대 노조를 겨냥한 강경한 메시지는 쏟아지나, 실업에 대비한 고용 안전망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주 60시간 이상 일할 수 있게 근로시간을 유연화하며, 아이를 낳으라는 역설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닐까. K직장인에게 월요병은 없다. 오늘도 출근해 빚을 갚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