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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의 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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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국어사전은 경우의 수에 대해 ‘어떤 시행에서 특정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가짓수’로 정의한다. 수학의 주요 뼈대 중 하나인 확률론의 핵심으로 확률과 통계, 수열, 함수 등을 활용해 발달한 개념이다.

수학 공식으로 표현하면 꽤 복잡하지만, 경우의 수는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 대표적인 게 로또다. 45가지 숫자 중에서 6가지 특정한 숫자를 조합해 당첨자를 가리는데, 1등에 당첨될 수학적 확률은 814만5060분의 1(0.00000012277)에 불과하다. ‘실낱같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이 희박한 경우의 수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적지 않다. 가위바위보나 주사위, 동전 던지기, 윷놀이 같은 것들도 생활과 가까운 경우의 수다.

자주 접하는 또 하나의 분야는 스포츠다. 월드컵이나 WBC 같은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서 경우의 수는 단골 레퍼토리다. 이기면 무조건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토너먼트와 달리 여러 팀이 함께 경쟁하는 조별리그에선 우리 팀 성적 못지않게 경쟁 팀의 경기 결과도 중요하다. 조별리그 일정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게 일종의 통과의례가 됐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한국이 16강에 오르기 위한 경우의 수는 ▶포르투갈전 승리 ▶같은 조 우루과이-가나전에서 우루과이 승리였다. 실현 가능성이 9%에 불과하다던 이 어려운 조건들이 모두 맞아 떨어지며 한국은 16강에 올랐다. 포르투갈전 막바지에 손흥민의 스루패스를 받아 황희찬이 넣은 기적 같은 결승 골이 없었다면 한국이 조 최하위로 탈락했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축구 팬들은 거의 없다.

반대로 WBC에선 경우의 수 때문에 울었다. 중국전을 앞두고 ▶중국전 승리 ▶같은 조 체코-호주전에서 체코가 4실점 이상 기록하며 승리, 이 두 가지가 한국의 본선 2라운드 진출 전제였다. 첫 번째는 충족했지만 두 번째에 발목이 잡혔다.

월드컵이나 WBC에서 매 경기 기분 좋게 이겨 경우의 수 따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걸, 앞으로도 경우의 수를 열심히 계산하며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저 기대했던 결과가 나와주기만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