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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휴가 갈 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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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성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윤성민 정치에디터

윤성민 정치에디터

영국에도 정치권의 ‘세대 팔이’가 있나 보다. 조너선 화이트 런던정경대(LSE) 정치학 교수는 2013년 논문 「세대를 생각하다」에서 좌우 정치 집단이 세대라는 개념을 자신들의 정치적 거대 서사를 만들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파는 복지 감축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좌파는 사회 저항을 끌어내는 언어로 세대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권도 세대 불평등, 반값 등록금 등의 바람이 불 때 재빠르게 88만원 세대, 3포 세대 같은 세대론을 끌어왔다. 청년 당사자들의 ‘청년 팔이’라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청년세대론은 최근 MZ세대론에 이르기까지 자가번식해왔다.

청년세대론 활용의 용례를 작성한다면 맨 끄트머리엔 이정식 고용부 장관의 발언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이 장관은 지난 6일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발표하며 “요즘 MZ세대들은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해서) ‘성과급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됐냐’(할 수 있을 정도로) 권리의식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말했다. MZ세대는 권리의식이 높아서 연장 노동에 따른 ‘한 달 살기’ 같은 보상 휴가 혜택을 잘 누릴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 장관은 최근 SK이노베이션 일부 직원들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보내 성과급 불만을 호소한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에서 일주일 넘게 휴가를 떠나는 일은 큰 도전이다. “요즈음 대학생들처럼(…) 불만을 노골적으로 서슴없이 표현했던 세대는 없었던 것 같다.” MZ세대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1979년 월간 ‘뿌리 깊은 나무’에 실린 글이다. ‘노골적으로 서슴없이 표현했던’ 베이비붐 세대도 그랬듯, 회장에게 DM을 보내는 MZ세대에게도 휴가는 회사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다.

바비 더피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책 『세대 감각』에서 세대론이 출생 시점에만 집중하면 ‘존재하지도 않는 집단 간 차이’를 부각해 정작 중요한 신호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하는 시간만 늘고 휴가, 야근수당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MZ세대의 불안감이 ‘정작 중요한 신호’가 아니었을까. 청년층이 이 장관에게 기대한 답변은 그래서 ‘MZ세대의 권리의식’이 아니라 늘어난 노동시간에 따른 보상을 보장할 법·제도에 대한 약속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