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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변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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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위문희 정치부 기자

위문희 정치부 기자

한국은 고려시대 때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서방에 이름이 알려졌다. 원나라와 무역하던 아라비아 상인은 고려의 수도 개경과 가까운 예성강 하구 벽란도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당시엔 ‘Corea’로 불렸다. 지금도 프랑스어로 한국을 ‘Coree Du Sud’, 스페인어로 ‘Corea Del Sur’라고 한다. 고려를 기점으로 유럽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현재 한국의 공식적인 로마자 표기는 Korea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이 Japan의 J보다 Corea의 C가 앞에 온다는 이유로 한국의 영어 표기를 바꿔버렸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프랑스어·스페인어 등 로망스어군 언어가 C를 주로 사용하고, 영어·독일어 등 게르만어파 언어가 K를 선호하는 경향 때문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1950년대 주한 미군 장교들 사이에서 ‘코리안 타임(Korean Time)’이 유행했다. 약속에 자주 지각하는 한국인을 보며 지어낸 단어라고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란 개념이 해외 주식시장에 등장했다. 한국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 기업의 주가보다 낮게 형성된 현상을 가리킨다.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주요 원인이었다.

코리아에 담긴 부정적 뉘앙스를 긍정적으로 바꿔놓은 건 201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한류 열풍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2012년 9월 한국 가수 처음으로 빌보드 메인차트 순위권에 진입한 게 신호탄이었다. 이후 Korea를 줄여 K를 붙인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등의 신조어가 잇따랐다. 2021년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은 한국어 단어 26개를 올리면서 ‘K-’를 한국 또는 그 문화와 관련된 명사를 형성하는 복합어로 소개했다.

이제는 K수식어가 지겹지 않으냐는 질문까지 들을 정도다. 스페인 매체 엘 파이스(El Pais)는 지난 12일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과의 인터뷰에서 “K라벨이 지겹냐”는 질문을 던졌다. RM은 오히려 “그건 프리미엄 라벨”이라며 “우리 조상들이 싸워서 쟁취하려고 한 품질 보증과도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K수식어를 마구잡이로 갖다 붙여서도 안 되지만 스스로 평가절하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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