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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향한 환멸, 푸틴이 써먹었다" 뒤에서 실속 챙긴 두 나라 [우크라이나 전쟁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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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 세계는 미국 대(對) 러시아 구도로 갈라졌다. 미국 등 서방은 침략을 자행한 러시아에게 대규모 제재로 압박했지만 푸틴의 전쟁을 멈추게 하진 못했다. 상당수 국가는 러시아 '눈치'를 보며 제재 동참을 미뤘고, 나아가 일부 국가는 '전시 특수'를 챙기기까지 했다.

2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서구 동맹은 러시아에 맞서 결집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를 '글로벌 연합'이라 선전했다"면서 "그러나 자세히 보면 생각보다 결집이 원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인도·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줄타기 외교'로 국익을 챙겼다고 전했다.

나렌드라 모디(오른쪽)인도 총리가 지난 2021년 뉴델리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오른쪽)인도 총리가 지난 2021년 뉴델리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WP에 따르면 인도의 경우 중국과 국경 분쟁이 지속하는 이상, 무기공급국인 러시아와 대립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나아가 서방 제재를 틈타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밀착하는 것도 인도 입장에선 득이 된다. 지난주 인도 정부는 러시아와의 무역 규모가 침공 이후 40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값싼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인 결과로 보인다.

전 인도 외무장관인 칸왈 시발은 WP에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인도와 자국의 정책이 일치하도록 압력을 가했지만 통하지 않자 인도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은 중국과의 대결 구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인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공공의 적'인 중국 때문에 미국이 인도의 입장을 눈감아 준다는 얘기다.

2월 22일 러시아 군 호위함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항구에 정박한 모습.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2023년 2월 17일부터 러시아 및 중국과 10일간의 합동 군사 훈련에 착수했다. AFP=연합뉴스

2월 22일 러시아 군 호위함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항구에 정박한 모습.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2023년 2월 17일부터 러시아 및 중국과 10일간의 합동 군사 훈련에 착수했다. AFP=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미국이 최대 외국인 투자자이자 최대 수출 시장임에도 최근 들어 군사 측면에서 중·러와 밀착하고 있다.

중국 글로벌 타임스에 따르면 중·러·남아공 3국은 지난 17일부터 열흘 일정으로 남아공 더반 인도양 해역에서 '모시2' 합동 훈련을 펼치고 있다. 4년 만에 이뤄진 이번 훈련을 놓고 3국은 '통상 훈련'이라고 주장했지만 서방 측은 "아프리카를 장악하려는 중·러의 군사 움직임"이라며 반발했다.

WP는 "남아공 집권세력인 아프리카 민족회의당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시대 수십 년간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면서 "특히 탄디 모디세 국방장관 등 남아공 고위 인사들은 소련에서 훈련받은 경험이 있다"고 짚었다.

서구가 저지른 식민통치에 아픈 기억이 있는 국가들이 러시아 압박에 미온적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남아공의 정치분석가 윌리엄 구메데는 WP에 "러시아는 식민지배를 당했던 국가들의 서구에 대한 '환멸'을 이용해 공격적인 구애에 나섰다"고 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달 아프리카 순방 기간 "미국·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예전 식민시대처럼 서구 국가에 의존하도록 만들려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리우보프 아브라비토바 남아공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WP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아프리카 식민지화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아프리카 대륙 국가의 해방 운동을 지지했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들이 미국 등 서구의 입장에 흔쾌히 동조하지 않는 배경을 설명하면서다.

결과적으로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3분의 2는 러시아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온 국가에 살고 있다. WP는 "유엔(UN) 193개국 중 141개국이 침공 이후 러시아를 규탄하는 데 표를 던졌으나 실제 33개국만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다"고 지적했다.

침공 1주년을 맞아 유엔이 '포괄적이고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에 도달할 필요성'을 강조한 새 결의안으로 러시아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 하지만, 구속력이 없어 실제 효력은 크지 않다는 회의론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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