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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슘페터 모먼트라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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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IT 산업부장

박수련 IT 산업부장

블록체인도, 메타버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챗GPT의 영민함에 대한 찬사, 인공지능(AI)에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AI는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모범답안 등이 지겹도록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AI 기업들의 숨 가쁜 움직임에선 눈을 뗄 수가 없다.

전 세계 수억 명이 AI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에 빠진 지금이 어쩌면 ‘슘페터 모먼트’일지도 모른다. 낡은 과거가 도태되고, 사회 구조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창조적 파괴’의 순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이런 역동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을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으로 봤다. 슘페터의 렌즈로 보니 챗GPT의 바탕이 된 ‘경쟁 생태계’에 눈길이 간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 레이스를 도발한 건 스타트업 오픈AI다. 이 회사 창업자인 샘 알트만은 구글 등이 그동안 ‘책임’을 이유로 비공개에 부쳐둔 대화형 AI를 대중에 과감히 공개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곧 일어날 미래에 대해 사람들이 직접 느끼고, 이해하고, 씨름하는 일을 (사회가)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포브스 2월 3일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사회 전체로 보면 공개경쟁은 자원의 효율을 높이기 마련이다. 오픈AI는 챗GPT 이전부터 음성인식 기술이나 이미지 생성 AI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그런 효율을 노렸다. AI 기술 서비스를 궁리하던 기업들이 오픈AI의 성과에 올라타면서 기술 확산의 속도가 빨라졌고, 관련 시장이 생겨났다. 챗GPT 이전 모델을 유료로 사서 쓰는 기업들이 이미 여럿이다. 월 20달러짜리 챗GPT 유료 상품도 나왔다. 이런 생성형 AI들에서 최적의 산출물을 뽑아낼 명령어(프롬프트)를 사고파는 중개거래 사이트도 있다.

이런 움직임이 지구 전체의 생산성 확대로, 개인의 자유를 더 키우는 창조적 파괴로 발전할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구글이 순식간에 ‘낡은 기업’이 돼버린 것 같지만, 그거야 구글 사정이고. 실리콘밸리의 벤처자본과 빅테크끼리의 경쟁, 그들끼리의 파티가 될 우려에서다. 벤처캐티털 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생성AI 스타트업 78곳에 13억7000억 달러가 몰렸다고 한다. 정보와 기술이 실리콘밸리로 더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한국 대통령이 챗GPT에게 연설문을 써보게 했더니 잘 쓰더라며, 공무원들에게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쓰도록 검토하라고 했다고 한다. 여야 의원들도 앞다퉈 챗GPT를 얘기한다. 신기하고 놀라운 마음이야 알겠지만, 지금이 슘페터 모먼트라면 참 아쉬운 메시지들이다. 혁신 경쟁을 촉진할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지 이 정부에서 누군가는 구상하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