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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한전, KBS 뒤치다꺼리로 골치 "TV수신료 민원 한해 5만건 육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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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올해 사상 최악의 적자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전력공사가 본업도 아닌 업무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름 아닌 TV 수신료 관련 민원을 처리하는 일 때문이다. 한해에만 5만건에 육박하는 수신료 관련 민원이 한전에 쏟아지면서, 재무 악화에서 벗어나려는 한전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서초지사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서초지사 모습. 연합뉴스

6일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은 총 4만8114건의 TV 수신료 관련 민원을 처리했다. 한전은 매달 전기요금을 청구할 때 가구당 2500원의 TV 수신료를 함께 징수한다.

민원의 상당수는 수신료 환불을 요구하거나 부과 기준에 대해 따지는 내용이었다. 한전이 처리하고 있는 수신료 관련 민원은 5년 전부터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7월까지만 해도 벌써 2만3172건의 TV 수신료 민원을 받았다. 한전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민원을 KBS에 이관하기도 하지만, 수신료 민원을 따로 담당하는 직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전기요금에 ‘원치 않는 TV 수신료가 함께 부과됐으니 환불을 해 달라’는 고객 민원이 많아 응대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TV 수신료 납부 거부 움직임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편향성과 공정성을 문제 삼는 주장이 힘을 받을 때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수신료 안 내는 방법’과 같은 게시물이 호응을 얻으며 환불 관련 민원이 늘어나는 식이다. 이와 함께 TV 수상기가 없는 가구에서 미처 모르고 냈던 수신료를 환불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본사업인 전기 관련 민원 처리만으로도 한전의 부담은 적지 않다. 지난해 한전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해 처리한 전기요금, 배전, 안전, 송·변전 관련 민원은 총 2만4287건이었다. 여기에 한전 고객센터 등으로 접수된 민원까지 더하면 처리 부담은 더 크다.

한전이 TV 수신료를 위탁 징수하면서 KBS 등 공영방송으로부터 6.15%의 대행 수수료를 받고 있지만, 어려운 살림에 큰 도움이 될 정도는 아니다. 지난해 한전이 받은 대행 수수료는 419억원이었다. 올해 한전이 예상하는 영업손실은 총 27조2027억원이다.

한전은 재무 개선을 위해 그동안 전기료 자동이체 고객에게 제공했던 할인 혜택까지 폐지하기로 하는 등 각종 수익 창출 방안을 쥐어짜내고 있다. 한쪽에선 송·변전 설비나 배전 공사 등 핵심 사업을 줄이고 있는데 TV 수신료 민원 업무가 한전을 괴롭히는 형국이다. 양금희 의원은 “한전 전 직원이 악화한 경영을 회복하는데 역량을 집중해도 모자란 상황인데, 5만건에 가까운 수신료 관련 민원 처리에 힘을 뺏기고 있다”며 “수신료 징수라는 부가 업무 때문에 한전 고유 사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회에는 전기료와 수신료를 분리해 징수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전 측은 “국회의 법안 처리를 지켜봐야 하는 사안으로 논의 결과를 성실히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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