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 일자리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美…기여도 1위는 韓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달 초 미국의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이 4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반도체 제조 공장을 미국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내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이 늘면서 올해 신규 일자리는 역대 최대인 35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합뉴스.

이달 초 미국의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이 4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반도체 제조 공장을 미국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내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이 늘면서 올해 신규 일자리는 역대 최대인 35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합뉴스.

#이달 초 미국의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이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공장(메가팹)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10년간 400억 달러(약 52조원)가 투입되는 사업으로 4만 개에 이르는 일자리가 생긴다.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은 25%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는 ‘반도체칩과 과학법(반도체법)’이 최근 발효된 영향이다.

#“땡큐 토니(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영어 이름)!” 지난달 26일(현지시간) 22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힌 SK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남긴 감사 인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SK그룹이 22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추가로 단행할 경우 미국 내 일자리는 2025년까지 4000개에서 2만개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미국 리쇼어링發 일자리 35만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g.co.kr

미국이 세계 일자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해외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옮기는 ‘리쇼어링’ 기업과 글로벌 기업의 투자로 올해 미국에 35만개에 이르는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겪은 뒤 미국이 적극적으로 국내 복귀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다. 한국의 양질의 일자리를 미국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의 비영리 로비 단체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가 19일(현지시간) 발표한 ‘공급망 위험에 따른 리쇼어링 가속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리쇼어링과 미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로 만들어질 신규 일자리는 34만8493개로 전망됐다. 올해 예상치는 지난해(26만5337개)보다 31.3%(8만3156개) 늘었다.

이는 단체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0년 이후 최대다. 2010년에 리쇼어링과 FDI로 늘어난 미국 내 일자리는 6011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년에는 18만 1037개로 늘었고, 지난해엔 26만5337개로 불어났다.

특히 올해 늘어날 일자리(34만 8493개) 가운데 62.9%(21만9283개)가 리쇼어링 일자리다. 나머지(12만9210개)는 해외 기업이 미국 내 직접 투자를 결정하면서 생겼다. 2019년까지 FDI 관련 일자리가 많았다가 코로나 19 이후 리쇼어링 일자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두 수치가 역전했다는 게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의 설명이다.

코로나19와 전쟁에 따른 공급망 위기가 원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 측은 “코로나19 위기는 미국의 수입 의존도 위험을 드러냈고, 그에 따른 공급망 문제와 자급자족 필요성이 리쇼어링의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과 중국의 갈등을 언급하며 “불안정한 지정학적 우려는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고 있어 리쇼어링이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 진출했던 미국 기업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데는 미국 정부의 정책 영향이 크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이달에 통과된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반도체, 전기차, 의약품과 같은 상품의 생산시설을 미국에 짓고 투자하면 세금을 깎아주고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며 “미국 정부가 기업들을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추는 데 관심이 커진 점도 리쇼어링이 증가한 이유다. 탄소 배출에 따른 세금이 도입될 경우 물류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어서다. 영국 금융사 바클레이스가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서한에 “유럽연합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탄소 가격 결정 방식과 세금은 광범위한 국경을 넘나드는 공급망의 매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양질의 일자리 미국에 뺏긴다' 경고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g.co.kr

월가에선 리쇼어링 흐름이 한동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주식 투자전략가인 질 캐리는 “리쇼어링은 장기적인 추세가 될 것”이라면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이 같은 흐름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BoA 집계에 따르면 이번 2분기 기업 실적 발표만 보더라도 ‘리쇼어링’이란 단어는 2019년 2분기보다 12배 가까이 언급됐다.

미국의 강력한 리쇼어링 정책에 한국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앞으로 제조업 중심으로 (기술력을 갖춘) 양질의 일자리를 미국에 뺏길 수 있다”며 “과거 값싼 인건비를 겨냥해 (한국 기업이 동남아 등지로 이전하며) 저임금 일자리가 나간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국가 간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 정부의 공격적인 기업 유치 정책에 우리나라 정책입안자들도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의 미국의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커졌다. 리쇼어링 이니셔티브가 올해 리쇼어링과 FDI로 미국 내 신규 일자리를 발표한 상위 10개국을 발표했는데, 한국이 3만5403개(기업 수 34곳)로 전체 1위다. 이어 베트남(2만2500개ㆍ2곳), 일본(1만4349개ㆍ46곳), 캐나다(1만3671개ㆍ40곳), 독일(9855개ㆍ60곳) 등이 뒤를 이었다. 중국은 8985개(46곳)로 전체 6위로 집계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