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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고유가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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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의 전환이 유발한 고유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 악화하였고,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에너지 부족국가인 한국의 입장에서, 고유가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와중에 일각에서는 정유사를 고유가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내 정유업계는 2020년 약 5조원의 적자를 겪으면서도 지속적인 투자로 키워온 정제능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그 결과 한국의 정제능력은 미국·중국·러시아·인도에 이어 세계 5위로 이미 일본을 추월했다.

인도 등 일부 국가는 자국 내 물량 부족으로 현재 석유제품 수출을 제한하고 있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내수를 충족시키고 남은 물량을 산유국인 중동 및 아프리카를 포함해 전 세계 60여 개 국가로 수출하고 있다. 특히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수출액은 반도체 수출액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정유업계의 공급 능력은 석유제품 가격 안정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6월 셋째 주 휘발유의 공장 출고가격(세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 평균치인 L당 1561.6원보다 약 17% 낮은 1331.9원이었다. 즉 정유사의 이익은 내수보다는 주로 수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부 또한 석유제품 가격 안정화를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의 유류비 부담 완화를 위한 유류세 인하, 운송업계 부담 완화를 위한 경유 유가 연동 보조금 도입, 산업계 부담 완화를 위한 항공유 등 할당 관세 인하, 에너지 취약층 지원을 위한 에너지 바우처 확대 등의 조치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고유가는 당장 통제하기 어려운 외생변수이기에 보다 장기적인 관점을 견지하면서 대응해야 한다. 특히 최근 정유사 대상의 ‘횡재세’ 도입 논의는 걱정이 앞선다. 정제시설 고도화 및 탄소 중립 등 미래를 대비하는 투자 활동을 위축시키면서 에너지 안보도 위협할 수 있어서다.

호주는 정유 산업의 위축으로 에너지 안보 약화, 일자리 감소, 석유화학·운송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는 등 부작용을 겪은 바 있다. 이에 정유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2030년까지 최대 20억5000달러의 석유제품 생산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연료안보법을 작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호주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정유사가 미래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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