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미술|예술성 보다「주체 사상」이 우선|【평양=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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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폭 80m의 지하철역 쪽무이(모자이크) 벽화, 높이 1백70m의 주체탑, 폭 52.5m, 높이 60m의 개선문…. 북한의「주체미술」은 거대한 벽화·조각·건축물 등 소위「대 기념비 미술품」이었다.
지난달 18일 오후 평양 지하철의 부흥역과 영광역을 안내한 역장 송도훈씨는『73년9월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평양 지하철도는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재, 우리의 힘으로 건설한 기념비적 창조물』이라고 말하고『이 훌륭한 벽화에는 영원히 색이 변하지 않게 구워 만든 색쪼각(타일)들이 한 평방메터(1평방미터)에 1만여 개나 들어있다』며 예술성보다는 그 규모를 강조했다. 그는 또 승리역·황금벌역·광복역 등 역마다 그 이름에 어울리는 천장모양과 조명, 그리고「인민들이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집체창작미술품」들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고 자랑했다. 부흥역의 경우 벽화 제목이『노동자들 속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혁신의 아침』『풍년의 노래』등으로「위대한 수령」과 그의「교시」「업적」을 드러내는 내용들.
『위대한 수령의 혁명사상과 혁명업적을 대를 이어 길이 빛내려는 우리 인민의 뜨거운 염원과 철석같은 의지를 반영하여 일떠 세웠다(건설했다)』는 주체사상탑은 김일성이 70회 생일을 맞은 82년 4월25일 제막된 백색 화강암 석탑.
1백70m 높이의 탑신 표면에는 70(년)×3백65(일)로 계산한 2만5천5백50개의 화강석을 붙었고 평양시내 어디에서 보아도 금세 눈에 띄게 높이 20m의 횃불조각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탑의 우기단 벼에는 높이 4m, 폭18m 크기로 김일성화와 목련꽃 바구니가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그 일대의 광장에 「조선 노동당의 기치 떠라 주체위업의 완성을 위해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인민의 혁명적 기상과 확고한 의지를 훌륭히 형상화했다」는 군상조각들이 곳곳에 만들어져「주체미술」의 현주소를 한눈에 보여준다.
주체사상을 위한「주체미술」은 항일 혁명 미술에서 시작돼 70년대에 완성됐다는 것으로 ▲인민을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로 키우고 ▲자주성을 위한 투쟁에 나서도록 고무하며 ▲물질문화생활도 주체의 요구대로 개조하는데 철저히 복무해야한다는 것.
주로 집체창작에 매달리고 있는 북한 미술인들은 주문에 따라 해외로도 진출, 에티오피아의 영웅탑, 짐바부웨·토고·예멘·소말리아·말타 등 여러 나라의 각종 기념비나 동상 및 벽화 등을 제작해왔다고 만수대 창작사 소속 미술가들이 자랑했다.
지난달 20일 묵었던 금강산 호텔의 구내 미술품 상점에는 금강산·묘향산 등 명산의 절경을 매우 사실적으로 채색한「주체적 조선화」가 대부분이었고 각종 화조며 동물이 그려진 민화를 여러 빛깔의 수채물감으로 찍어 원화처럼 감쪽같이 재생해낸「수인목판화」도 있었다.
한편 지난달 16일에는 윤이상 음악연구소가 있는 평양국제 문화회관의 전시실에서 이석호씨의『목련』(1961년작)과 정종여씨의『봄』(1981년 작)등 남한에 남아있는 작품이 흔치않은 월북화가들의 작품들을 발견했다. 『고성 인민들의 전선옹호』『용해공들』『농노』등이 대표작으로 꼽히는 정씨가 인민예술가 칭호를 얻고 조선미술가 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낸 데 비해『소나무』『청봉』『해바라기』등을 그린 이씨는 그 대가적 화풍에도 불구하고 그저「미술가」로서 생애를 마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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