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빗나간 「보안사 대책」(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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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방부가 내놓은 보안사 민간인 불법사찰사건 조사결과와 수습책은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실망스런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물론 서빙고 분실 폐쇄 등 기구축소나 국방부 장관의 지휘감독권 강화노력 및 자질부족 요원정리 등은 상징적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3공 이후 지금껏 고문에 의한 인권유린의 대명사처럼 돼온 이른바 「빙고호텔」의 폐쇄나 국방부 직할부대이면서도 장관의 관할을 벗어나 권위주의시대의 요원들이 답습해온 폐단을 정리하고 가닥을 잡겠다는 약속을 우리는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번에 발표된 국방부의 조사결과 및 조치는 6공 정권의 인권·민주화 의지를 의심하게 된 국민 대다수가 납득하기에는 충분치 못할 뿐 아니라 진정한 대책이기 어렵다고 우리는 본다.
무엇보다도 이번 보안사파동의 핵심은 군에 의한 민간인 불법사찰이다. 내부에서 보면 기밀서류의 유출과 사고보고체제의 마비도 중대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이 충격을 받은 것은 군이 민간 개인을 대상으로 사생활까지 계속 사찰해왔다는 점이다.
이같은 기능을 국방부는 이번 대책에서 폐지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의 관행과 타성으로 실무자들이 과잉수집활동을 한 것은 사실이나 정치사찰은 아니었다』고 했고,『군을 보호하기 위해 군관련 간첩과 좌익사범 수사에 참고하는 한편,유사시 북한의 통일전선공작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은 대상자에 대해 적 또는 좌익 불순세력과의 연계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작성했다』고 했다.
요컨대 「실수」는 있었지만 평소 군을 이들로부터 보호하고 유사시 적과의 접선을 막기 위해 이번에 있었던 일은 필요하다는 뜻으로,계엄법과 군사법원법 등의 법적 근거로 제시했다.
이는 궁색한 변명이다. 법조계의 의견대로 군의 민간인 사찰·수사는 평시의 경우 군관련법 위반자에 국한돼야 하고 계엄하에서만 계엄법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보안사는 대민 사찰의 권한도 책임도 없으며 앞으로 이런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했던 취임 첫날의 이종구 장관의 약속과도 어긋난다.
이번의 국방부 발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지난 5일 국방부의 『해당인사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 발표내용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의 여론이 거부감을 나타내자 장관과 사령관을 바꿨고 그것은 보안사쪽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다는 말까지 나오지 않았던가. 왜 이처럼 국방부의 자세가 흔들리고 있는지를 우리는 자세히 모른다.
다만 철저한 반성의 바탕 위에 서 있지 않은 채 여론 무마용의 인상이 짙은 기구나 명칭 개편만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의도가 이번 발표에 함축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진정한 대책을 사건본질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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