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직원의 폭언(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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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2일 오전7시 안기부정문부근 서울 중부경찰서 주자파출소.
바로 직전 기습적으로 화염병시위를 벌였던 대학생 9명 가운데 2명에 대한 신상파악 등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안기부수사관 2명이 들이닥쳐 다짜고짜 이들의 신병인도를 요구했다. 무조건 반말이었다.
『신병인수서를 써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어처구니없는 표정의 중부서 성희구서장 등 경찰간부들이 볼멘소리를 했지만 대답은 『바쁜데 그런 것은 필요없다』는 한마디 뿐이었다.
경찰의 수사권과 최소한의 체면은 경찰의 날인 이날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었다.
뒤이어 현장을 취재중인 취재진들도 안기부직원들의 횡포에 시달려야 했다.
한 카메라기자가 학생들이 연행돼간 안기부정문쪽을 향해 카메라의 방향을 돌리는 순간 느닷없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여기가 감히 어딘줄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거야.』
안기부직원들은 카메라를 잡고 밀치면서 『찍으면 부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취재를 방해하느냐』는 항변은 『나이도 어린게 어디다 눈을 부릅뜨느냐』 『기자××들 눈깔을 뽑아버리겠다』 『다 죽여버리겠다』는 폭언에 파묻혀 버렸다.
안기부직원 5∼6명에 의한 취재방해와 위협은 현장에 나와있던 경찰간부들의 만류로 겨우 진정됐다.
윤석양이병에 의한 민간인 사찰폭로로 같은 정보기관인 보안사가 비판의 표적이 되고있는 현실이 안기부직원들에게 비뚤어진 위기의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5공시절 상식과 관행을 벗어난 정보기관의 무소불위식 태도가 6공중반까지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있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서글픔과 함께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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