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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의 부상은 대중이 우매한 탓?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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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호 20면

민주주의 공부

민주주의 공부

민주주의 공부
얀-베르너 뮐러 지음
권채령 옮김
윌북

요즘 우리 인터넷 공론장에는 최근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책의 핵심 주장에 비추면, 그런 심리의 바탕에는 대표성에 대한 도덕적 독점 욕구가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편만 도덕적으로 옳고 따라서 대표자가 되어야 하고,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는 시각 말이다. 하지만 포퓰리즘 성향(민주당 지지자들이 포퓰리즘 세력이라는 얘기는 아니다)과 한 끗 차이인, 나만 옳다는 식은 선거의 핵심을 놓쳤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선거는 진실을 찾는 절차가 아니다. 선거가 진실 찾기 게임이었다면 ‘충실한 반대파(loyal opposition)’라는 개념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적 절차를 신뢰하고 선거에서 졌다고 반발하는 게 아니라 다음 선거를 기약하는 태도로 결과에 승복하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투표장에서의 선택은 어느 정도 근거 있는 팩트에 기반해야 한다. 하지만 팩트에 대한 쌍방의 합의가, 가령 대선 같은 공적 다툼의 전제조건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이쯤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가자. 이게 무슨 얘기인가. 서로 각자의 팩트만 옳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 보니 우리는 사사건건 사생결단식으로 싸울 뿐 아니라 상대를 인정조차 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럴수록 ‘객관적인’ 팩트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1970년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고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정치이론·정치사상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논쟁의 막다른 골목을 유연하게 우회하는 듯하다. 미국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래시(1932~94)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인용하면서다.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 오직 활발한 공적 토론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 흔히 토론의 전제 조건으로 여겨지는 정보는 오히려 토론의 부산물로 봐야 한다.” (127쪽)

여기서 ‘정보’를 저자는 슬그머니 ‘팩트’로 바꿔친다. 그런 다음 정치적 문제에서 의견 불일치는 팩트를 둘러싸고 생기는 게 아니라, 사회 내 여러 집단을 창의적으로 대표하는 데서 생겨난다고 했다. 갈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새로운 대표의 등장에 열려 있어야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서문에서 저자는 트럼프나 브렉시트를 사례로 들며 모두가 민주주의가 위기를 말하지만 정작 민주주의가 무언지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말 위기인지, 그렇다면 해법은 뭔지를 따져보기 위해 민주주의의 “첫 번째 원칙”과 과거 모습, 변천 과정을 살펴본 게 책이다. 전 지구적 포퓰리즘의 부상을 우매한 대중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갈등의 틀’을 만들어내는 민주주의 매개 기구, 즉 정당과 언론의 위기 상황을 문제 삼았다. 모든 ‘합법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민주적 불복종도 가능하다고 했다. 제목대로 민주주의 공부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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