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파문」 잠재울지 의문/보안사 개편안 내용과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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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군ㆍ재야 시각차… 대수술과 “거리”/검증장치 뒷받침 있어야 효과
지난 4일 탈영병 윤석양 이병의 폭로에 의해 일파만파로 번진 보안사의 대민사찰 파동은 8일 장관ㆍ사령관 문책인사에 이어 22일 국방부의 자체 「진상조사 결과보고」가 국회 국방위에 제출돼 일단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보안사 개편의 방향도 윤곽이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이날 이종구 국방장관이 국회보고를 통해 밝힌 보안사 운영개선 내용은 야당ㆍ재야 등이 요구하고 있는 해체나 3군 보안대로의 환원같은 「대수술」과는 거리가 있는 데다 관련자 처리 등에서는 사태를 보는 시각차가 확연히 드러나 파문이 쉽게 가라 앉을지는 의문이다. 상황에 따라 또다른 차원의 정치문제화될 가능성도 없지않다.
국방부는 사건 직후 국방부 특검단ㆍ정보본부ㆍ군검찰로 합동조사단(단장 이대희 특검단장)을 구성해 10일부터 14일까지 진상조사를 벌이는 한편 이번 사건으로 노출된 보안사의 구조적인 문제점 등에 대한 개선안을 검토해 왔다.
국방부가 이날 밝힌 보안사의 제도 및 운영에 대한 개선방향은 ▲유사기능의 통폐합을 통한 기구 및 임원축소 ▲정부기관 및 민간단체에 대한 보안사 요원의 출입 엄격통제 ▲보안사에 대한 자체감사활동 강화 및 요원의 기강확립 ▲보안사에 대한 장관의 감독강화 ▲보안사 활동으로 인한 군내 위화감 해소 등 크게 다섯가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방위의 강력한 의지표명에도 불구하고 발표된 「개선책」은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각종 문제점을 해결하고 국민의 불안을 씻기에는 미흡한 느낌을 주고 있다.
우선 이번에 문제된 서빙고 분실을 폐쇄하는 등 유사기능을 통폐합해 기구와 인원을 대폭 줄이겠다고는 하지만 감축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데다 시행여부를 검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과거 6공초기 감축발표와 마찬가지로 「말로만의 감축」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씻기 어렵다.
이와 함께 이번에 문제된 대민 사찰이라는 「오해」를 줄이기 위해 대민관련 기구를 줄이고 정부기관 및 민간단체에 대한 보안사 요원의 출입을 엄격 통제한다는 것도 「업무상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라는 단서를 붙여 해당지역 부대장의 사전허가를 받으면 가능토록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현재와 마찬가지가 될 가능성도 없지않다는 지적이다.
국방부는 또 그동안 보안사가 장관의 직할기관이면서도 청와대에 대한 「직보체제」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군내에서도 계급과는 무관하게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했다는 비판을 의식,보안사 주요간부의 인사관리와 주요업무의 장관보고 및 장관휘하의 감사기관 운영 등을 개선방안으로 제시했으나 이는 지금도 「하도록 돼있는 것」을 「하지 않는 데서 문제가 비롯」된 것이어서 진정한 해결방식이 아니라는 시각이 있다.
이같은 문제제기는 국방부가 이번 사건 직후 합동조사단을 구성,조사결과를 밝히겠다고 했을 때 『사건의 당사자가 사건을 조사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의 의구심이다.
이 장관은 이날 보고를 통해 문제가 된 사찰대상자들의 선정기준을 ▲군관련 간첩 및 보안사범 전력자 ▲군관련 불순좌익 용공세력 관련자 ▲방산업체의 노사분규 관련자 및 배후조종자들이라고 밝히면서 『선량한 일반민간인에 대한 정치사찰은 아니었다』고 강조했으나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기에는 아쉬움이 있고 보기에 따라서는 정부의 솔직성에 대한 문제제기 소지를 남기고 있다.
결국 보안사 문제는 제도의 측면과 함께 제도와는 무관한 실제운영이라는 측면이 얽혀있고 통치권력과 연결돼 단순한 정보기관이상의 정치성이 개재된 사안이어서 「근본적인 수술은 통치권 차원에서만 가능하다」는 진단도 무리가 아니다.
국방부가 「보안사제도 연구위원회」에 구체적인 개편안을 마련토록 했지만 국민들이 과연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개선안이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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